<시답잖은 옛날 이야기>
입직
<시답잖은 옛날 이야기>
입직
  • 안산뉴스
  • 승인 2020.03.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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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어머니와 관련한 이야기를 모두 끝내자 일요일 오후에 원고 마감 시간에 쫓기는 일이 없어졌다. 오랜만에 두 주 연속 푹 자고 났더니 다소 허탈감이 들었다. 허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뭘 써볼까 고민하다가 첫 직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어떻겠느냐고 살짝 말을 던졌더니 성공적이지도 못한 노무 이야기를 뭣할라고 쓸라고 하느냐는 원성이 쇄도한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좀 뽀대 나는 것을 골라 몇 자 적고자 하니 친구들은 이해하기 바라고 밋밋한 내용에 지루하였다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나는 몇몇 대기업에 합격을 했지만 그 중에서 롯데그룹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수가 탁월했는지 악수였는지는 좀 길기 때문에 뒤에서 별도로 언급하겠다. 아무튼 롯데에 들어가서 18년 동안 녹을 먹었다. 그 세월은 롯데그룹중앙연구소 기획관리실에서 시작하여 세븐일레븐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다 나올 때까지의 지나온 여정 위에 묻어있는 훈장 같은 세월이다.

젊은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금싸라기 같은 시간, 그 시간은 참으로 유장한 세월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세상에 이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누군가는 세월을 쏜 화살이라 했고 어떤 이 ‘나는 가만히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흐르고 세월도 흐르니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라고 말했는데 나 또한 그리 생각한다.

롯데그룹에 입사한 나는 경기도 청평에서 지옥 훈련이라고 불리던 합숙 훈련을 끝낸 후 그룹 내에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인다고 ‘스스로’ 말하는 중앙연구소에 배치를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그룹계열사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곳이다.

발령을 받고 서울 영등포 양평동 중앙연구소 사무실로 첫 출근하던 날 복도를 길게 따라 들어가 사무실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때 따끈한 대추차 한 잔을 조심스레 받치고 들어오는 눈매 초롱초롱한 한 여직원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마저 잊었지만 외사촌 형수님처럼 곱게 웃어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의 중앙연구소장은 공군 소장 출신 고 김정린 전무였고 권익부 이사가 업무 총괄을 맡고 있었다. 훗날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대표이사를 지낸 이근수 차장이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었고 그 조직의 맨 아래 쫄따구 신입사원으로 입직한 것이다.

입사하고 받아든 당시 봉급은 대략 60여만 원쯤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쓰기만 했지 한 푼도 벌어보지 못한 내가 받아 쥔 ‘월급’이라는 것은 나라는 인간이 사회인이 됐다는 증거이자 부모 곁을 떠나 험난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는 물증이었다.

사회인으로서 ‘독립’, ‘책임감’ ‘의무’ 이런 것들에 포로로 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제도권 속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 창공을 향해 나는 새처럼 몸은 가벼웠고 세상은 모두 내 것 같았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순간이 그때였다.

그렇다, 그 봉급이라는 것을 받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학창 시절의 많은 날들을 밤 새워 공부해야 했고, 많은 시간을 독서하고 시험 보고 젊은 청춘을 오뉴월 뙤약볕으로 달구었고 동지섣달 한설로 단련했으며 그만큼의 깊은 사색도 했을 것이다. 난생 처음 받은 월급봉투를 주머니 속에 넣고 퇴근하는 전철 속에서 설레고 가슴 뛰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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