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한 조각
퍼즐 한 조각
  • 안산뉴스
  • 승인 2020.03.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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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마을에서 우리는 각자 퍼즐 한 조각이다. 하나하나 마다 가치가 있다고 자부할 수도 있겠으나 낱개로는 어떤 그림인지, 여간해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각들이 소통하며 모여 보기로 했다. 조화롭게, 차분히 조각을 맞추어 가다보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하겠지 싶었다. 가지각색에 관심사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정이 싹트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전에는 개인이나 작은 모임 중심의 활동에 익숙했다면, 조금씩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면서 큰 모임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역량을 키우고 스스로 마을을 계획해 가면서 자치의 길과 방향도 습득해 나갔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길에서 모일 공간,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으며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던 몇몇이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사랑방 역할을 해 줄 공간을 마련했고 그 곳이 바로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이다.

퍼즐은 따로 있는 조각들을 찾고 연결하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마을에는 누구나,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쉽게 만나서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교류하는 장으로 언제나 대화가 가능하고 간단하게 전구를 갈아주거나 수도꼭지 교체, 막힌 하수구를 뚫어 주는 곳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만나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생활소품도 만들어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라도 끼니 때 들르면 반가운 이웃들이 맞아주고 따뜻한 한 끼 대접받을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런 장소를 만들어 냈다. 마을에 공간이 생기니 수다 시간이 길어지고 아이디어가 모였고 오랫동안 꿈꾸던 마을공동체의 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대의 끈을 단단히 엮여 마을기업이 되고 일자리도 꽤 만들어 냈다.

주민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주민자치 교육과 마을 컨설팅, 자치단체 역량 강화에도 일조할 만큼 성장했다. 공동체 지수, 포용력 지수가 OECD 꼴찌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언제까지 달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패배감을 딛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퍼즐협동조합의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할 절박한 문제다. 협동을 이루고 시골 같은 정서가 있는 마을, 행복한 마을, 따뜻한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퍼즐의 시작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으나 주민의 힘, 동행의 든든함으로 1년 6개월을 헤쳐 왔다.

우리의 사명(Mission)은 마을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고 핵심 가치(Core Value)는 마을 사는 재미, 마을 사람 중심, 마을 협동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참여하는 주민의 힘을 믿고,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힘, 바른 선택을 돕고, 협력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이웃과 행복해지는 꿈을 꾼다.

그렇게 쉼 없이 열심히 달려 왔지만 이제 다시 위기를 맞았다. 그 동안 진행해 오던 자치 교육, 마을계획 컨설팅, 강연, 벤치마킹 등 모든 모임이 취소되면서 수익 사업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엄중한 상황에 길도 보이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1년에 한번 반드시 총회를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총회를 통해 조합원들을 만나고 성과를 공유하며 새로운 한 해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서면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기본법 28조 5항에 따라 만나지 않고 서면으로 회의 목적, 안건, 일시 및 장소를 정하여 정관으로 정한 방법에 따라 총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각 조합원으로부터 서면 결의서를 받아 안건을 의결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것인데, 함께 함을 확인하는 축제의 자리여야 할 총회조차도 못하게 된 이 지경이 참 서글프다.

준비하는 과정, 만나는 설렘도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석처럼 빛나다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 어려운 때를 빌어 퍼즐 한 조각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되새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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