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운 것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들 
  • 안산뉴스
  • 승인 2020.03.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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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미 안산청년네트워크 

재난상황은 우리 사회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했던 것들이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가능한 ‘잠시 멈춤’은 누군가에겐 ‘생계의 멈춤’이 된다. 당장 오늘의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재택근무,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 등은 남의 나라 먼 이야기일 뿐이다.

택배 노동자가 새벽 두시에 물건을 배송하다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코로나로 늘어난 주문 물량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생긴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가 밀어 넣는 물량에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자동차 회사는 생산현장에 들어가는 노동자에게 지급할 방역 마스크를 놓고 원청과 하청을 구분해 지급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방진마스크'를 지급한 반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방한대'를 지급한 것이다.

이마저도 자기 돈으로 사서 마스크를 쓰는 노동자들에게는 복에 겨운 소리다.

콜센터 집단 감염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취약한 근무 환경 탓에 얼마든지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었지만, 마스크도 재택근무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급여가 끊기면 생계가 곤란해지는 노동자들은 할당된 콜 수를 채워야 했다.

정읍에서 능동 감시받던 신천지 교인이 투신 사망했다. 신천지 전에 우리의 이웃이었던 이들은 코로나를 만들어내는 더러운 세력이 되었다.

기댈 곳 없던 그들이 신천지에 기대게 된 근본 이유를 우리는 우리 사회에 물어야 한다.

자, 짐작이 가는가? 코로나보다 무서운 그것들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과 혐오’다.

재난상황에서 그것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짐과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남발된다.

언론은 재난상황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고 혐오의 크기를 부풀린다. 그리고 그 대상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혐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코로나가 사라진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난 불평등과 혐오를 덮어버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임대료를 받지 않는 건물주들, 국민들의 모금, 자원봉사, 의료진들의 희생, 일상을 지켜내는 사람들 덕분에 다행히 지금의 코로나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단기적인 국민들의 노력이 아닌 장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코로나는 계속 일어날 수 있다. 그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대응하게 될 것인가. 이제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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