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값
목숨값
  • 안산뉴스
  • 승인 2018.11.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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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웍 회장

“토끼야, 너의 죄 없는 줄이야 알지만 과인의 한 몸이 너와 달라, 만일 불행하면 한 나라의 백성과 신하들 보존하기 어려운 줄 너인들 설마 모르겠느냐. 너 하나 죽은 후에 과인이 살아나면, 모든 백관 다 살리는 것이니 일등 충신 아니겠느냐? 특별히 사당 지어 천만 년이 다하도록 봄가을로 향화 끊어지지 않게 할 터이니 죽는다고 슬퍼 마라.”

위 대사는 우리나라 고전 ‘별주부전’의 한 토막으로 용왕이 자라를 시켜 토끼를 용궁으로 잡아들인 후 토끼에게 죽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가만히 뜯어보면 수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용왕의 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내 목숨 값과 너의 목숨 값은 다르다’라는 것이 아닌가?

전쟁 영화를 볼 때 가장 불편한 지점이 주인공의 목숨값이 과하게 다루어 질 때이다. 주인공이 총을 쏘면 한꺼번에 여러 명이 쓰러진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무리 많은 총을 맞아도 한 번에 죽는 법이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다하고 죽는다. 거기다 죽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쁘고 멋있기만 한지. 주인공의 총 한방에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의 무게는 주인공의 그것보다 가벼운 것일까?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형이고 동생이고 또 친구가 아니던가? 주인공의 죽음이 우리의 가슴을 짖누르는 것처럼 그들의 죽음 앞에 누군가는 우리가 주인공의 죽음을 대하던 것 이상으로 비탄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는가?

화랑 유원지에는 호국 영령 충혼탑이 있다. 그런데 화랑 유원지에 건립하기로 한 추모공원에 반대하는 측에서 이 충혼탑을 들어 추모공원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호국영령이 잠들어 계신 곳에 ‘감히 세월호 따위’가 납골당으로 들어올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안산시청 앞을 지날 때 반대측에서 방송하던 멘트 중에 들었던 말이다. 내가 잘못 들은 멘트이기를 바란다.

묻고 싶다. 호국 영령의 목숨 값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목숨 값은, 그 무게는 다른 것이냐고. 아니지 않은가? 세월호 안에서 스러져 간 학생들은 호국 영령들과는 달리 단지 그들 목숨의 가치를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들 역시 호국 영령 이상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가치 있게 꽃 피워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기림 받을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이 아니었던가?

만일 목숨 값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만일 당신의 자녀가 난파선에 사회 지도층 인사와 둘이 남겨진 상황에서 오직 한 사람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경우 그 사회 지도층 인사가 용왕과 같은 이유로 너보다는 내가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당신은 기꺼이 당신의 자녀에게 너의 목숨의 가치는 그 사람보다 못하니 네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또 하나 묻고 싶다. 호국 영령은 왜 죽었는지를. 그들은 부모 형제를 위해,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래서 당신들의 후손만큼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죽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형제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어처구니없이 스러져 가버렸다. 이 광경을 보며 호국 영령들은 얼마나 통곡하셨을까? 얼마나 노하셨을까? 왜 우리들의 죽음을 이다지도 헛되이 만드느냐고.

그래서 제안한다. 충혼탑 옆에 세월호 추모 공원을 건립하자고. 그래서 호국 영령들에게 살아서 이 나라를 지켜 주셨듯, 이 못난 후손들이 지켜주지 못한 그 어린 학생들을 하늘에서 우리 대신 안아달라고, 외롭지 않게 지켜달라고. 그것이 추모 공원 반대 측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호국 영령들을 더 귀하게 모시는 참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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