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9)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19)
  • 안산뉴스
  • 승인 2020.03.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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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곡당산(八谷堂山) 산신당(山神堂)·산신제(山神祭)

팔곡당산의 산신당은 상록구 팔곡일동 산43번지에 위치해 있다 안산팔곡주공아파트 뒤쪽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10여분 정도 오르면 산신당에 다다른다. 산신당의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지어졌다. 본오동의 약수터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고 팔곡초등학교 뒤에서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산신당에서 정상으로 3분 정도 더 오르면 산지단이 있다.

팔곡당산의 산신제는 언제부터 지내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930년대부터 산신제와 관련한 제의문서가 남아 있는 것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설화를 보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내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팔곡동 산신제는 행정구역상 반월동의 팔곡일동과 본오동의 팔곡이동 내의 여러 마을이 함께 지내는 마을제의이다. 본래는 팔곡일동의 우묵골, 남산뜰, 팔곡이동의 샛골, 담너머, 건건동의 건지미 등 5개 마을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지내왔다. 현재는 샛골, 우묵골, 담너머 3개 마을이 중심이 되어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를 모시는 산신제를 지낸다,

○당의 형태와 위치

제의 장소는 마을사람들이 당산이라 부르는 샛골 뒷산 정상이다. 산신제 관련 장소는 세 곳으로 산정상의 산지단, 산신당, 산 중턱의 당물(당우물)이다. 당집의 형태는 본래는 항아리에 볏가리를 엮어 두른 형태에서 간단한 당집형태를 갖추었다가 1964년 현재의 형태로 중수되었다. 산신당 안쪽에는 왼쪽에 도당할아버지(男山神), 오른쪽에 도당할머니(女山神)을 모셨다.

○제의 준비

마을 사람 중 집안에 흉사가 없는 정한 사람으로 당주, 제관, 축관을 뽑아 제의를 준비한다. 당주는 제물을 비롯하여 제반 제의 준비를 한다. 매년 음력 10월 1일~3일 사이 날을 받아 자정에 제를 지냈으나 20여 년 전부터 정오로 바꾸어 지낸다. 날이 잡히면 당주, 제관, 축관은 당물에 목욕재계하고 근신한다. 당주는 제물을 준비할 때 반드시 당물로 술과 음식을 준비했다. 당물은 현재는 약수터로 쓰이지만 아직도 마을사람들은 산신제 준비 외에는 일반 식수로 쓰지 않으며 현재도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절대 당물을 마시지 않는다. 제물은 황소를 쓰는 것이 원칙이나 재정상의 이유로 현재는 소머리로 바뀌었다. 이 외에 조라술, 백시루, 편, 삼색실과, 통북어, 적탕, 노구메, 그리고 반드시 숭어가 제상에 오른다.

○제의 진행

각 마을별로 2명씩 정갈한 남정을 뽑아 제물을 산 정상으로 옮겼다. 이들을 ‘주비’라고 하였다. 제관, 당주, 축관들이 산에 오르고 주비들이 제물을 옮겨 놓으면 제의가 시작된다.

제의 절차는 먼저 산 정상의 제단에서 당주를 중심으로 유교식 산지단 제사를 지낸다. 산지단 제사는 제관이 간단히 단잔으로 지내며 산지단 제사가 끝나면 산신당으로 내려와 분향, 참신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순서로 지낸다. 산지단 제사는 제관들만 참석하지만 산신제는 당일 깨끗한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절을 올릴 수 있다.

○제의 마무리와 결산

제의를 마친 후에는 쇄곡경로당과, 담원경로당에서 한 해씩 번갈아가며 모여 음복한 후 제의 경비에 대하여 결산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제의 문서는 1932년부터 기록되어 온 장부와 축문형식 등이 있다 팔곡당산 산신당과 산신제는 2011년 7월 안산시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팔곡당산제 제의문서’(1932)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http://cafe.daum.net/ansa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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