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학창시절
철부지 학창시절
  • 안산뉴스
  • 승인 2020.04.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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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키들이 가당찮은 생각을 한 것도 같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과 인간에 대해 성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국’과 만나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그것을 영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학창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성장 못지않게 다듬는 것도 많았어야 할 그 시기에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만끽하다 스스로를 절제로 단속시키지 못했고 수양이 일천하여 자만에 빠졌으며 타인의 견해를 존중하는 성숙한 애타의 길을 함께 봤어야 했는데 그것이 서툴렀다. 그런 버릇이 몸에 체득되어 요즘도 자주 독선과 나태 에고, 못 말리는 가벼움으로 나타는 것은 후회되는 대목이다.

수업을 땡땡이 치고 전자오락실에 가서 적잖은 시간을 쏟은 것도 철부지들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이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 당시의 전자오락은 바다 건너 저들 서구 선진국들이 전파한 ‘보편 산업’이었지만 아직 지구촌 변방에 머물러 있던 대한민국에게는 낯선 ‘서양 문명’이었다. 이때 수입된 문명은 이른바 80년대 판 ‘EDPS’로 통칭되던 정보·통신·전자 산업의 맹아 형태로서 이후 한반도에 불어 닥칠 거대한 IT 산업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전자오락이라는 이 낯선 게임은 과연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이었고 배설의 즐거움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만끽하는 욕구 충족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게임은 갤러그나 벽돌 부수기였는데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가며 벽돌을 박살내는 초기 버전은 비록 항문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정교한 타격이 환호 그 자체였다. 인간이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있다니. 늘 그렇듯이 문명은 낯설음 뒤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몰래.

이것은 파괴하여 쌓여가는 점수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만족을 이어가는데 이때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크게 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파괴하면서 얻어지는 즐거움, 이 무슨 개 같은 소리냐, 그러다 한없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한 날짜를 잡아 인간은 전자오락을 닮은 ‘진짜 전쟁’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재앙 같은 전쟁, 있어서는 아니 될 전쟁, 유발 하라리 교수가 인류 역사에서 이미 사멸되었다고 말한 전쟁 그런 전쟁 발발의 심사는 진정 야욕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약한 한개 인간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내면 또 다른 누군가는 개발된 그 무기로 상대방을 부수고, 부서지면 다시 건설하고 건설이 완료되면 다시 무너짐을 당하는 작업이 끝없이 반복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인류 역사 6천년은 시지프스의 작업처럼 올라감과 미끌어짐, 세움과 허물어짐, 창조와 파괴, 코스모스와 카오스가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진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는 도서관과 오락실과 교정과 4대문 안을 분주히 오가며 독서를 하고 조용필 노래를 듣고, 막걸리도 마시고, 저항도 하고 그러면서 서양 사람이 만들어준 문명인 전자오락기에다 한국 사람이 만든 50원 짜리 동전을 넣고 ‘만들어 보고 부수어 보는 야욕의 전자오락 게임’을 마구 목격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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