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이름값
  • 안산뉴스
  • 승인 2020.04.0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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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크워크 회장

기원전 497년, 공자 나이 55세 때 공자는 제자들과 위(衛)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위나라 왕이 공자에게 정사를 맡기려고 초청한 것이다. 국경에 이르렀을 때 수행 중이던 수제자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은 위나라에 가시면 장차 어느 정사를 먼저 돌보시겠습니까?” 간단히 말해 ‘집권하면 무엇부터 하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공자의 답변은 뜻밖에도 간명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이같이 나라를 다스리고자 할 때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정명(正名) 사상’은 이후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치국의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름을 뜻하는 명(名)은 저녁 석(夕자) 아래 입 구(口를) 받친 글자이다. 어두운 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입으로 이름을 부른다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은 단지 기표를 가리키는 기의의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는 ‘명전자성(名詮自性)’이라 하여 이름은 그 사물의 성질을 나타낸다고 보았으며, 특히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이 그의 생에서 이루기를 바라는 원(願)을 담아 그의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실이 바른길에서 멀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름값’을 못한다고 혀를 차기도 하였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선생과 같이 옥살이하는 친구 중에 이름이 ‘대의(大義)’라는 전과 3범의 친구가 있었다. 선생은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대의를 위해서 살라고 이름을 지었을 그 친구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정을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젊은이는 태어나자마자 광주의 대의동 파출소 앞에 버려졌기에 할아버지가 있을 수가 없었다. 버려진 그 날, 파출소 당직 경찰의 성인 정씨와 대의동 파출소를 이름으로 삼아 정대의라고 동사무소에 출생신고가 된 것이었다. 비록 선생이 이 이야기를 쓴 동기는 대의라는 이름을 통해 그 청년의 인생을 읽으려고 했던 자신의 창백한 관념성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쉽게 공감하는 부분은 사람 이름에는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소망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이처럼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대신 자(字)나 호(號)를 지어 이름을 대신하였는데, 청천 하늘의 뭇 별들만큼이나 이에 얽힌 많은 사연이 전한다. 조선 선조 시대의 정여립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동계를 조직했다가 모반의 혐의를 쓰고 자살했다.

그런데 정여립이 모반했다고 제시된 근거 중 하나가 아들의 이름과 호였다. 아들의 이름은 옥남(玉南)이었고 호가 거점(去點)이었는데, 옥(玉)에서 점을 하나 제거하면 왕이 된다는 것이 모반의 증거였던 것이다. 김구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 앞으로 백성과 범부의 생활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호를 백범(白凡)으로 지었으며, 민족 사학자이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정몽주의 일편단심에서 단(丹)자를 취했다.

그리고 종교인이며 언론인이었던 함석헌 선생의 호는 ‘신천옹(信天翁)’이다. 이는 영어로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이름인데, 날 때는 어느 새보다 높이 날지만 지상에서는 물고기 한 마리도 잡을 줄 몰라 남이 먹고 남은 찌꺼기만 주워 먹고 산다고 하여, 자신을 이 새에 비유하여 스스로 지은 호이다.

이름에 관해서는 서양도 다름이 없어, 로마인들은 이름이 좋은 사람부터 전쟁터에 보냈으며 카이사르 역시 이름을 보고 부하를 발탁했다고 한다. 아무런 전공도 없는 스키피오가 일약 장군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 이름이 카이사르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름과 그 실상이 꼭 들어맞는 것을 명실상부(名實相符)라고 한다. 또한, 이름은 결코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즉, 명예로운 이름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실적이 있어야 널리 전해지는 것을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총선의 막이 올랐다. 거리마다 수많은 총선 출마자들이 부모님이 염원을 갖고 지어주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섰다. 부디 이번 총선에 당선되어 국회로 입성하시는 선량들은 하나같이 명실상부하여 그 이름이 결코 명불허전이 아니기를, 한마디로 꼭 ‘이름값’ 하시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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