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0)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0)
  • 안산뉴스
  • 승인 2020.04.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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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벽(丁彦壁) 선생 묘와 묘갈(墓碣)

정언벽(1612년(광해군4)∼1652년(효종 3)) 선생은 다산 정약용의 6대 조부다. 정약용이 정언벽 선생의 묘를 참배하러 올 때 성호 이익 선생의 묘에 먼저 들러 참배하고 정언벽의 묘를 참배한 일화는 유명하다.

정언벽 선생의 묘역은 안산시 단원구 양상동 산7에 위치하고 있다. 하양상동이라고도 부르는 아랫버대 마을에서 나주정씨 재실 앞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영동고속도로 밑을 빠져 나가면 우측으로 정언벽 선생의 묘갈이 보인다.

묘갈이라기보다는 신도비라고 보아야 할 정도로 크고 조각이 뛰어나다. 벼슬이 종3품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해서 문중에서도 신도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묘갈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정언벽의 모친인 여산송씨, 아들인 정시윤과 손자들의 묘역이 있고 묘역의 왼쪽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고속도로변 작은 봉우리 정상에 정언벽의 묘가 있다.

조선시대 문신인 정언벽의 자는 계홍(季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관찰사 호선(好善)의 아들이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6대 조부다. 1630년(인조8)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1644년(인조22) 문과(文科)에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거쳐 박사(博士)를 지내고 예문관봉교겸 세자시강원설서(藝文館奉敎兼世子侍講院設書)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조, 병조좌랑(兵曹佐郞),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홍문관 교리(校理)등을 역임했다. 헌납 때 왕자 징(徵)의 죄가 논의되자 이를 변호하여 무사케 했다.

선생의 묘는 부인 사천목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은 호석을 두른 172×540cm, 묘갈 287×75×27cm, 묘표 124×60×21cm이다. 상석, 향로석, 동자석 2, 망주석 2기가 있는데 특히 동자석의 조각이 아주 뛰어나다. 원래 묘는 선영인 용인군 포곡면에 있었으나 1653년(효종 4) 아들 시윤에 의해 지금의 위치로 천장됐다.

묘갈은 묘의 남쪽 약 500m 지점에 있다가 1992년 9월 서해안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본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지점인 현 위치로 이전했다. 정언벽 선생의 묘와 묘갈은 1991년 11월 안산시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내고장 안산’(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 1990)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http://cafe.daum.net/ansa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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