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으면 가마때기
가만 있으면 가마때기
  • 안산뉴스
  • 승인 2020.04.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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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서울 시내 일부 대학들이 단과대학을 지방으로 옮기던 80년대 이야기다. 모교도 이공대와 체대 산업대 등을 기흥으로 옮긴다는 소문이 스믈스믈 돌기 시작했는데 이 소문은 시국 대모에 몰두해있던 학생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었다. 우리 학과를 지방으로 보낸다고 이 개같은 새끼덜이 우는 놈 뺨때린 것인데 당장 총장실이 있는 본관 석조건물까지 시위 대오를 넓혔고 총장 나오라 학장 나오라 어용교수 나오라 하면서 단과대 지방 이전 철회를 요구했다.

밤에도 여기저기 떼를 지어 집회를 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시국이 시끄러웠는데 학내 문제로 난리가 아니었다. 문리대나 법대는 놔두고 왜 공대와 산업대만 수원으로 옮기려고 하느냐, 우리가 그리 만만하게 보이냐가 메인 구호였다. 우리가 단과대학 이전을 반대한 이유는 첫째 입학 점수가 차이가 많이 나서 학과의 법통에 문제가 생긴다, 둘째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그 시점부터 기산이 되므로 서울에서 졸업한 사람은 선후배 단절이다, 셋째 지방으로의 통학은 너무 멀다, 넷째 서울과 수원 왔다리 갔다리 하믄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 기타 도서관 편의시설 등이 지방에는 전무하다 등등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분 나쁜 것은 법대, 문리대, 음대 등만 남겨놓고 공대 산업대 등 말랑말랑하고 몰쌍몰쌍한 학과들만 지방으로 내보낸다는 것이었다. 돈 많은 부잣집 엘리트만 놔두고 공부 못한 서민 학과만 지방으로 보낸다는 짖거리가    ⃝ 같이 자존심 상했던 것이다. 시국 게시판 옆으로 관련 벽보들이 내걸렸다. ‘공과대학 기흥 이전 웬말이냐!’, ‘공과 대학 기흥 이전 결사 반대!’, ‘가만 가만 있으니까 가마니때긴 줄 아냐!’와 같은 것이 그런 벽보들이었다.

그러나 이전 반대 데모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열 지방 이전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단과대학 지방 이전이 정책처럼 번지고 있던 당시의 트렌드를 타고 학교 당국에서 추진하던 이 계획을 일부 학과에서 물리적으로 막을 재간은 없었다. 막기 위한 뚜렷한 명분이 없었고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막강한 힘을 가진 학교 당국과 싸울 용기나 지도력이 부재였다. 혈기뿐이었다. 산업공학과 학생들의 가상했던 ‘공과대학 구하기’ 노력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공대를 기흥으로 옮긴 후 단 한 사람의 제대 복학생이 나와도 서울 본교에다 강좌를 개설한다 같은 대안을 학교 측에서 내놓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학교 측 제안은 교활했지만 명분은 있었고 학생들에게는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흘린 땀에 비해 실리없는 개털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지내다가 졸업 학년 봄 축제 때던가 어느 교양 강좌 특강을 듣고 필이 꽂혀가지고 갑자기 ‘제조업’에서 신문기자 쪽으로 취업 목표를 바꿔버렸다. 오래된 꿈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올바른 길로 계도하기 위해서는 ‘사회참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므로 별도의 기회에 기술한다. 그렇게 해서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나 보좌관을 1차로 설정하고, 2차는 ‘대기업-제조업’ 그리고 그게 안 되면 ‘중소기업-직종불문’ 이렇게 목표를 정정했다. 만약 그것까지 안 되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전라도 신안으로 가서 소금 장사를 하며 먹고 사는 것으로 잡았는데 철이 없다고나 할까 대책 없이 자유분방했던 영혼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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