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2)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2)
  • 안산뉴스
  • 승인 2020.04.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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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領議政) 김류(金鎏) 선생 영정(影幀)

김류[1571(선조4)∼1648(인조28)] 선생 영정은 종손인 김동윤씨가 소장하고 있다. 묘는 안산시 단원구 와동 광덕산에 아들 김경징(金慶徵), 증손자 김노득(金魯得)의 묘와 함께 묘역을 이루고 있다.

영정은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록될 당시 그려진 것을 모본으로 하여 영의정에 올랐을 때 모사한 화첩본으로 보인다.

좌측에 “인조대왕반정일등공신영의정승평부원군김류 대신촬형상(仁祖大王反正一等功臣領議政昇平府院君金瑬 大臣撮形象)”이란 기문이 있다.

촬형상(撮形象)이라고 한 것은 전신 중에서 일정 부위만을 묘사하는 화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특히 목 위로 치켜 올려진 단령의 형태 등이 당시의 공신도상(功信圖像)의 특징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 초상화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으로 안면 윤곽은 진한 갈색선으로 잡고 주조색은 밝고 엷은 살빛으로 강약으로 주어 명암을 나타내고 있다.

지본설채인 이 초상화는 부분적이기는 하나 어깨의 선처리 등에서도 17세기 초상화의 양식적인 특성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김류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충신 김여물의 아들로 조선중기의 공신으로,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23년 거의대장(擧義大將)에 추대되어 이귀·신경진(愼景禛)·이괄(李适) 등과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이 반정의 공로로 병조참판에 제수되고 곧 병조판서로 승진되고 영의정에 올랐다. 대제학을 겸하는 동시에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646년 소현세자의 빈인 강씨(姜氏)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학문은 서인계열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이(李珥)·성혼(成渾)의 계열을 이었으며, 특히 송익필(宋翼弼)을 사사했다.

반정에 성공한 뒤 노서(老西)·소서(少西)로 갈리자 신흠(申欽)·오윤겸(吳允謙) 등과 더불어 노서를 주도하였으나 될 수 있는 한 서인과 남인을 같이 쓰려고 노력했다.

문장은 기력(氣力)을 숭상하고 법도가 엄격하였으며 시·율도 역시 정련청건(精鍊淸健)하고 글이 또한 기묘하여, 공경(公卿)의 비문도 많이 썼다. 저서로는 ‘북저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류 선생 영정은 1991년 11월 안산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내고장 안산’(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 1990)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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