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졸업 시즌
분주했던 졸업 시즌
  • 안산뉴스
  • 승인 2020.05.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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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졸업 학년이 되자 그간 많이 놀았던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 정신을 차리고 일단 전공과목과 영어 공부 계획을 세웠다. 그랬는데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공부 계획 세운 기념으로 친구들과 또다시 원주 간현천으로 MT를 가서 모닥불 피워놓고 환상의 1박 2일을 째지게 놀았다.

최장 17년을 땅 속에서 살다가 나뭇가지에 올라와 포도시 열흘 살다 죽는다는, 그것도 열흘 내내 울면서 살다 운명한다는 매라주가 그해 초여름 무척이나 길게 울었다. 길게 준비하여 짧게 죽는 매미 매라주, 매라주는 매미의 전라도 말이다. 멀리 꽃진 목단나무에서부터 선동호 풀섶까지 한 철 생명이 길고 간절하게 울 때 나는 입산수도하는 심정으로 살포시 즈려밟고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 가서 먼저 한 일은 칸을 막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책을 펴는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사방 10미터 이내에 여학생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은 절대 생략하지 않았다. 내 특기이자 장기인 여학생을 훑어보는 전광석화 같은 행동을 눈치 채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우선 필기시험에 자주 나오는 생산관리와 경영과학, 경제학이나 투자론, 유통·무역·마케팅 위주로 집중했고 토플은 이재옥 토플책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이재옥 토플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통째로 달달 외워버렸다. 현재 내 머릿속에 저장된 영어라는 학문은 중학 때의 메드리 삼위일체와 고교 때의 성문종합영어 그리고 대학 때의 이재옥 토플 어휘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니 회화는 미국 사람 앞에만 서면 버벅거릴 수밖에.

사회학, 정치학은 물론이고 어떻게 될지 몰라서 법률과 문학 공부도 했고 심리학이나 일반물리까지 청강했다. 물리학도는 다 알지만 난 처음 들었던 이론인 양자역학에서 빛의 본질이 입자냐 파동이냐의 의심은 너무 흥미로웠다.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물리의 모든 분야가 그 양자역학의 개념과 방법에서 나온다는 강의를 들을 적에는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당’이 혹시 물리학에서 말하는 반세계(反世界)가 아닐까 하는 당시의 의구심은 지금도 남아있고.

파괴만을 추구했지만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극히 사랑했던 갤러그 전자오락도 스톱했다. 물론 파전집 막걸리도 끊었고 호프집에서 500시시 가운데 깔아놓고 ‘언 놈이고, 밟아라!’ 외치던 객기 치기도 멈췄다. 수염은 덥수룩했고 모가지에 땟국물은 줄줄, 청바지는 닳디 닳아 무릎이 튀어 올랐다. 공부하다가 졸음이 오면 코카콜라를 병째 마셨다. 요즘도 콜라를 마시면 목줄 타고 또르르 내려가는 카페인 맛 깊은 곳에서 담쟁이 덮인 모교 중앙도서관이 떠오르고, 분수대 앞 잔디에 누워서 손가락 사이로 바라보던 솜구름이 눈에 어른거린다.

취업 공부를 하면서도 나라에서 실시하는 기사 시험 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산업공학에서 볼 수 있는 기사시험으로 품질관리 기사와 공정관리 기사가 있었다. 운이 좋았던지 그해 여름 모두 합격했고 그중 공정관리는 전국적으로 열 명도 아니 되었는데 우리 과에서는 나만 붙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었다. 학부 마지막 학년은 하나에다 열개를 걸었던 때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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