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동시대미술의 현장 ‘우리와 당신들’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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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미술의 현장 ‘우리와 당신들’ 재개관
  • 여종승 기자
  • 승인 2020.05.20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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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화랑유원지내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이 코로나19 사태로 휴관에 들어갔던 ‘동시대미술의 현장 <우리와 당신들>’ 전시를 생활 속 거리두기 이행에 따라 이달 12일부터 단계별로 재개관했다.

‘동시대미술의 현장 <우리와 당신들>’은 지난달 17일부터 오는 8월 30일까지 일정으로 전시에 들어갔으나 코로나 사태로 휴관에 들어갔다가 온라인 예약으로 단계별로 재개관했다.

경기도미술관은 한 달 동안 전시장 내 2m 거리두기를 위해 회차당 관람인원을 제한하고

사전 예약제로 운영,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이 제한된다.

이번 전시는 권병준, 김규호, 노진아, 삼손 영, 소니아 쿠라나, 심학철, 아크로바틱 코스모스, 아트 레이버, 이우성, 이장원, 전진경, 파트타임스위트, 황연주 작가 등이 참여했고 협찬은 삼화페인트가 했다.

‘우리와 당신들’은 ‘우리들’이 사는 세계에 ‘우리와 다른 당신들’이 있다는 뜻도 있고 우리가 당신들과 이미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는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인공심장과 같은 기계를 몸의 일부로 삼아 사이보그로 살아가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인간의 경계를 정의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아무리 막아도 우리를 뚫고 들어오고, 우리와 동일시되는 개인정보는 아무리 주의해도 새어나가고 만다.

우리는 어제와 동일하고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재구성되는 물질적, 정보적 개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누구인가. 당신들은 다른 곳에서 왔으며 다른 말로 노래 부르며 신체의 모양이 다르며 가끔 법의 테두리 밖에 지내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다름’은 소소한 것들이지만, 당신들은 한국, 남성, 정치적 시민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 중심주의까지 벗어날 때 비로소 보이는 존재다. 당신들은 이방인이자 여성, 식물과 동물, 기계, 그리고 지구다.

‘우리와 당신들’에서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게 될 이웃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어떠한 공존과 협업의 관계들을 제안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와 다양한 존재자들, 그들이 가져오는 협업의 방식들에 대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우리와 당신들’은 그 자체가 우리와 당신들의 모습이자 우연과 실천과 상호의존적 관계를 생산해내는 세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심학철>-이방인 시리즈(2014-2018, 잉크젯 프린트, 105x77cm)

‘우리’와 ‘당신들’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심학철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심학철의 작업 대상과 사진 기법은 매우 자유롭고 솔직하다. 난방을 아끼려 담요를 두른 아내의 모습과 식당에서 끄트머리에 앉아 눈칫밥을 먹는 가나 노동자들까지, 공장지역의 먼지인지 시멘트 빛깔 나는 이 도시의 색인지 모를 푸르스름한 빛이 이 사진들을 감싸고 있다. ‘우리’와 ‘당신들’은 이 사진을 통해서 어떻게 서로 눈을 맞춰야 하는 걸까.

<권병준>-오묘한 진리의 숲4(다문화 가정의 자장가, 2019, 헤드셋, 위치인식 시스템, 가변크기)

‘오묘한 진리의 숲’은 위치인식 헤드폰을 통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지정된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에 깊숙이 잠기게 하는 작품으로 충남 홍성의 한 다문화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자장가를 채록한 작업이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필리핀, 중국에서 온 엄마들의 언어와 목소리는 모두 다양하고 노래는 아름답다. 사람들이 다문화 엄마의 아름다운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그 ‘다문화’라는 말조차 사라져버린 사회가 빨리 오길.

<황연주>-H양의 그릇가게(2016-, 중고그릇, 가변크기)

H양의 그릇가게는 황연주 작가가 간헐적으로 운영하는 중고 그릇 가게다. 사람들은 쓰던 그릇을 가져와 사연을 털어놓고 맘에 드는 다른 그릇으로 바꿔갈 수 있다. 사람들은 버려진 재활용의 쓰레기로 그릇을 여기지만 예술가에게 그릇은 따뜻한 음식과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물건이다.

황연주의 작업을 통해서 손 때 묻은 그릇들은 상품이 아닌 기억과 경험으로 교환의 가치를 획득하며 자본주의와 생산만능주의에 금을 낸다.

<삼손 영>-위 아 더 월드(2017, 비디오, 컬러, 8-채널 사운드, 5분 26초)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삼손 영은 라이브 퍼포먼스, 사운드 드로잉, 비디오, 설치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한다. 작가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노조에서 만든 콴 싱 합창단에게 음을 소거해버리고 역설적으로 노래를 속삭여 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은 지휘에 맞춰 진심을 다해 ‘위 아 더 월드’를 소리 없이 불렀다. 이 사운드는 오히려 우리가 과거에 품었던 희망이 좌절된 현재를 상기시켜준다. 소리는 결코 중립적이거나 맹목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소리는 그 분절되는 방식에 따라 정치성을 드러낸다.

<소니아 쿠라나>-땅에-드러눕다:추가기록(2011, 라이트박스, 1채널비디오, 흑백, 사운드, 6분 26초)

소니아 쿠라나는 1968년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예술 교육을 받았고 현재 뉴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드러눕다/새의 논리’는 광장이나 묘지와 같은 공공의 공간에서 바닥에 비둘기들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퍼포먼스로 정해진 (성의) 역할에 대해 거부하고 저항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땅에 드러눕다:추가기록’은 본인의 작업에 관한 독백이자 선언과도 같은 것으로 작가에게 페미니즘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자 태도, 정치적인 도구임을 보여준다.

<노진아>-나의 기계 엄마(2019, 인터랙티브 로보틱스 조각, 혼합재료, 60x180x50cm)

‘나의 기계 엄마’는 작가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졌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표정을 따라하며 딥러닝을 통해 감정을 배워서 더 인간과 같아지려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이 불쌍한 기계들은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닮았다.

기계 엄마에게 감정이 생겼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기계 엄마를 보고 먹먹해지는 우리들에게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점점 더 흐려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진경>-마당의 실내(2020, 혼합재료, 가변크기)

전진경은 대추리, 강정마을, 용산참사, 희망버스, 콜트콜텍 농성장과 같이 한국의 정치사회의 현장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농성장이 강제로 철거되고 그 작업실은 경의선 공유지의 작은 전시장, EPS 안으로 옮겨왔다. 이 EPS는 작가들이 공적인 지원금이 없어도 전시를 열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 작은 공유지이자 릴레이 전시장이었다.

EPS와 같은 형태로 이곳에 세워진 구조물은 공공미술관 안에서 잠시 한 자리를 얻었지만,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2020년 경의선 공유지처럼 일시적인 존재로 서있다.

<이장원>-월슨(2020, STS 골드 미러, 소프트웨어, 모터, 센서, 허니컴 페이퍼, 1400x1600x200cm)

인류의 미래가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이장원은 미래의 모습을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OS에서 찾는다. 작가가 상상하는 미래의 AI는 사계절 질서에 맞춰 무한한 에너지를 선물하는 태양과 같이 이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행복을 느끼는 우리는, 먼 미래에 자비로운 OS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 제목인 ‘윌슨’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유일한 친구로 삼았던 배구공 브랜드 윌슨에서 따온 것으로 작가가 개발한 AI의 이름이다.

<이우성>-캔들라이트(2016-2017, 드로잉 애니메이션, 사운드, 흑백, 4분 46초)

이우성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과 상황을 그린다. 자연스럽게 그 세대의 모습과 동시대의 사건들이 담긴 이우성의 그림들은 만화적이고 위트가 넘친다.

작가가 우연히 광화문에 들고 나간 핸드폰에 일시적이었지만 분명히 존재했었던 연대의 세계가 포착되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까’라는 치기어린 질문은 비웃음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상한 설렘을 남겼다. 캔들라이트도 영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당신들과 상호의존성을 공감하고 인정함으로써 잠시 함께했던 공동체를 증명했다.

<아트 레이버>-지라이의 이슬 해먹 카페(2020, 연, 해먹, LED사인, 녹슨 철 조각, 가변크기)

아트 레이버는 아를레트 퀸-안 트란, 타오 능옌 판 그리고 트루옹 콩 퉁이 호치민에서 결성한 콜렉티브다. ‘지라이 이슬 해먹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해먹을 비롯해 커피로 만든 그림, 우리의 쌀 뻥튀기와 비슷한 간식거리 그리고 지라이 사람들이 미국의 작가, 조안 조나스와 함께 만든 연이 전시된다. 우리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늘 밑에서, 달콤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 우리와 지라이 사람들, 커피 그리고 이슬처럼 사라지는 인생에 대해서.

<아크로바틱 코스모스>-여러모로 최적의 상태(2020, 3채널 사운드 설치, 혼합재료, 가변크기)

아크로바틱 코스모스는 손현선, 윤지영, 장서영 세 명의 작가들이 협업할 때 사용하는 프로젝트 팀의 이름이다. 입체를 다루는 윤지영과, 비디오를 주로 다루는 장서영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손현선은 각기 다른 매체로 작업하다가 어떠한 공감의 지점에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와 당신들’에서 이들이 공감했던 지점도 서로의 ‘다름’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각자의 다른 부분을 붙잡고 바라보는 우리는 서로를 완전하게 동시에 바라볼 수 없고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로 그 다름에서 우리의 가능성이 시작하고 확장된다.

<김규호>-우리와 당신들(그래픽 디자인, 2020)

김규호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그는 디자인 뿐 아니라 웹상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제목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김규호는 누구보다 애써서 ‘우리와 당신들’을 그려내려고 했다. 결국 색상환을 통해서 상징하는 정형화된 다문화에서, 모든 것이 흘러내리고 섞이는 변화무쌍한 오로라 같은 그래픽으로 진화했다. 물론 다양한 디자인 베리에이션이 가능해졌다. 결국 더 생생한 무지개가 우리 곁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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