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든 취업은 시작되고
어찌됐든 취업은 시작되고
  • 안산뉴스
  • 승인 2020.05.20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졸업 학년 2학기 개강을 하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노느니 장독 깨며 논다고 우연히 신문에서 본 제일기획이라는 곳에 순전히 장난으로 원서를 내고 역시 장난으로 광화문 풍문여고에서 시험을 봤다. 답안지를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그러다가 자 그럼 지금부터 슬슬 취업 원서를 써볼까, 어느 곳에 원서를 낼까 하면서 친구들과 학과사무실을 왔다리 갔다리 하던 차 생각지도 않은 제일기획 필기시험 합격통지를 받았다.

별로 생각은 없었지만 지도교수도 권하고 해서 면접에 응해보기로 했다. 이 회사는 필기 합격자들을 서대문 농협중앙회 건너편에 있던 보영빌딩(지금의 강북삼성병원) 15층에 끌어 모태 놓고 면접을 실시했는데 면접은 피를 말리는 적성검사부터 시작했다. 정신 상태라나 뭐라나 그딴 것을 테스트하는 이 괴상망측한 검사에 합격해야만 집단 면접을 볼 수 있는데 그 적성검사라는 것이 문제는 쉬운데 그야말로 사람잡는 것이어서 대게 여기서 다 떨어지게 되어 있다.

또 집단 면접인지 떼 면접인지 하는 것도 요즘 생각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이런 것이었다. 한 서너 명의 수험생을 쭉 앉혀 놓고 면접관 예닐곱 명이 다소 위협적인 자세로 앉아 대각선으로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요즘의 경제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광고기획의 향후 발전 방향에 관해 말해보라, 심지어는 ‘오늘 아침 읽은 신문 사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와 같은 파격적인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장난치나 싶었다. 그러나 난 제일기획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애초부터 내 목표에는 곳이었고 ‘깨고 노는 장독’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삼성그룹 계열이라는 사실도 필기시험 당일에야 알았다.

그런데 제일기획 시험을 치른 후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지게 된다. 누구든지 이럴 때 한두 번쯤은 바람이 들게 마련인데 갑자기 물 건너로 공부하러 가고 싶다는 바람이 그것이었다. 대기업에 간다고 얼마나 가치가 있겠느냐 그것보다 학위를 받아서 선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제법 어른 같은 생각을 하면서 종로 유학원 가서 상담을 하고 성적표를 번역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말하자면 진로의 재구성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다가 해외는 멋이고 물 건너는 무엇이냐, 그곳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 아니냐, 비싼 돈 주고 학교 다녔으면 삼천리 금수강산 조국에서 풀어먹을 생각을 해야지 뭔 개 소리냐, 돈은 또 좀 많이 들겠느냐 하는 죄송하고도 불경스럽고 가상한 생각도 했다. 며칠간 이것저것 장고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취업의 길로 되돌아오는데 이 부분 역시 미루어 놨다가 별도로 자세히 기술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취업 준비를 해서 롯데그룹에 공채 11기로 합격을 했고 앞서 본 제일기획의 최종 합격 통지서도 받았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나중에 삼성계열이라는 사실에 ‘혹’하고 너무 기분 째졌던 제일기획의 최종 합격 경쟁률은 알고 보니 50대 1이 넘었다. 말씀드리기에 면구스럽고 유치하지만 삼성과 롯데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 오래 전 쌍팔년도 이야기다.(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