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지 말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부서지지 말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 안산뉴스
  • 승인 2020.06.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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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진 안산새사회연대일:다 교육팀장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이직을 위해 주말 내내 자격증 공부와 영어, 중국어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당장이라도 관두고 싶지만 경력 2년을 채우지 못하면 재취업이 어려워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너무 힘들 때는 심리상담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그 밖의 시간에는 거의 잠만 잔다고 했다.

괜찮냐는 물음에 친구는 대답했다. “서른을 넘겼으니 어린 나이도 아닌데 커리어를 더 쌓아놓지 않으면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인력이 될지도 몰라.” 보장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그는 갖고 있는 모든 시간을 자신을 팔릴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데 쓰고 있었다.

주변의 또래 청년들을 만나면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계속 일하기 위해 일터에서 부당한 것을 참고 견디며, 생존하기 위해 끝없는 ‘자기계발’의 행진을 뒤쫓는다. 이 불안한 행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이들은 100:2.5의 경쟁률을 무릅쓰고 공무원시험에 매달린다. 취업준비생의 약 60%가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다.

청춘의 낭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생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 속에 내던져져 있다.

고용불안으로 인한 위험은 심리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4년 전 이맘 때, 구의역에서 일하던 청년 김 군이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 뒤로도 2017년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하던 실습생 홍수연님, 2018년 이마트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이명수님,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님, 2019년 수원에서 건설노동을 하던 김태규님이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밖에도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다치고 죽고 있다. 대다수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다.

이 문제는 사실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경비노동자 최희석 씨의 경우도, 그가 모욕과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밑바탕에는 극단적인 고용 불안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걸까? 단지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걸까?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각기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사람’이 기업들에게는 싼값에 쓰고 고장 나면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되고 있다.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도, 고용유지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2020년의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할수록 정신적으로 탈진되고 육체적으로 파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코로나가 덮치기 전부터 이미 재난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깎아가며 어학공부를 하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애쓴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안전장치 없이 위험 속에서 일하며 버틴다. 재앙의 당사자가 내가 아니기 만을 바라면서.

그러나, 개개인이 혼자 살아남거나 혼자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아닌 고립된 ‘개인’인 채로는 이 거대한 재난을 극복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공동체의 재난에 맞서는 연대의 힘을 목격하고 있다. 대구의 격리된 이웃에게 생필품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위험 지역으로 자원해서 의료 지원을 가면서, 우리는 이웃과 우리 자신을 함께 구해내고 있다.

노동에서의 재난에 맞서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함께 뭉쳐서 연대하고 저항해야 한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야 한다. 구의역 김 군과 김용균님을 위한 행동, 비정규직·하청노동 구조를 바꾸기 위한 행동에 동참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코로나를 이겨낸 ‘함께’의 힘으로 연대할 때,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산재사고와 고용불안의 구조적 재난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해낼 수 있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함께 연대하자. 함께 저항하자. 오늘을 이겨내고 함께 내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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