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5)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5)
  • 안산뉴스
  • 승인 2020.06.03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탄대(安坦大) 선생 묘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615-1에 위치한 안탄대 선생의 묘의 봉분은 쌍분으로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황씨(黃氏)이다. 묘소 석물로는 묘표 1, 문인석 2, 망주석 2, 상석 1, 향로석 1개가 있으며, 묘표는 1656년(효종 7) 안탄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묘표음기는 외손 계열인 신최 (申最)가 짓고, 신승(申昇)이 글씨를 쓴 것이다.

선생의 묘 아래쪽에 풍해군 이잠의 묘가 있다. 전주이씨 영양군파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묘역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했으나 반월공단 조성이후 공해로 인해 모두 말라죽었다.

조선 선조의 진외조부인 안탄대(安坦大)를 모신 유택이다. 안탄대는 조선 11대 중종의 장인이며, 창빈안씨(昌嬪安氏)의 아버지다. 안탄대의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고, 적순부위(迪順副尉, 정7품)에 올랐다.

사실상 부원군(府院君)의 위치에 있었는데도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사양하고 검소와 겸손으로 생애를 바쳤으며 사후에 조정에서는 우의정(右議政)을 추증(追贈)했다.

 

 

 

 

 

 

안탄대 선생의 딸인 창빈안씨(昌嬪安氏)는 1507년(중종 2)에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녀로 들어가 중종의 모후인 정현대비의 각별한 후의로 20세에 중종의 후궁이 됐다. 3남1녀를 출산하였는데, 장남은 영양군(永陽君), 둘째는 일찍 죽었으며, 막내는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딸은 정신옹주(靜愼翁主)이다.

따라서 선조(宣祖)의 생부(生父)가 덕흥대원군이므로, 선조 이후 왕위는 창빈안씨의 부친인 안탄대 선생의 외손으로 계승되는 셈이다. 선조가 그를 우대하여 묘에 비석을 세우고 묘직(墓直)을 두어 관리하여 금벌(禁伐)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묘 관리가 부실해지자, 효종 때 왕명으로 능원대군(綾原大君, 원종 2남)과 인평대군(麟平大君,인조의 3남) 등을 비롯한 그의 외손들에게 묘를 보호하게 하고, 석물을 갖추게 하여 새로 단장했다.

묘비문을 보면 효종 때 왕명으로 비문을 지었으면서도 안산 안씨(安山安氏)만을 밝히고, 그의 선조와 가계(家系)를 밝히지 않아 그의 자(字)나, 호(號), 출생일과 사망일조차 전하지 않는다. 묘표를 통해 안탄대의 행적과 당시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선생의 묘는 1985년 9월 20일 경기도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내고장 안산’(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 1990)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5)

※ 안산시 역사자료 보는 곳:다음카페

안산의 역사와 문화(http://cafe.daum.net/ansancultur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