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잖은 취업 회고
시답잖은 취업 회고
  • 안산뉴스
  • 승인 2020.06.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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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둬 번 망설이다가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허접한 옛날이야기 하나 꺼내 적으며 웃어본다. 4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즈음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코펙:KOPEC)라는 곳에 원서를 내고 여의도 윤중중학교에서 시험을 봤다. 그 회사는 미시간주립대에서 약관 23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나중에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했던 정근모라는 분이 마흔 다섯 나이에 사장으로 있던 공기업이었다.

필기시험과 면접 그리고 신원 조회까지 거쳐 최종 합격자를 확정했는데 해가 바뀌어 이듬해 2월이 되어서야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롯데그룹중앙연구소에 신입으로 입사하여 똥오줌 못 가리고 있던 터여서 바쁘기도 했거니와 또 기왕 합격했으니 이곳에 그냥 눌러 앉자 하는 안일한 심사로 코펙 합격통지서를 뭉개버렸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코펙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예를 들어 그곳이 한전 자회사 중에서 대우와 근무 조건이 제일 좋다는 것이라든가 또는 산학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통지서를 씹어버렸는데 얼마 후 코펙에서 다시 독촉 전보가 날아왔다. 마포대교 남단 왼쪽에 있는 하얀 건물 사무실에서 코펙 인사부장과 만났다. 서른 댓 되었을까, 너무 친절해 보이는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신분은 중앙부처 공직 신분이고 급여는 재벌그룹 수준이네. 입직 후 일차적으로는 전남 광양에서 근무하며 학점 인정 과정도 공부를 한다네. 경영 계획 수립 등에 자네 같은 전공이 필요하네. 기왕 합격했으니 잘 생각해보고 낼 모레 출근하게.”

그날 이후 다시는 듣지 못한 주식회사 코펙 인사부장의 목소리는 세월이 무던히 흘렀는데 아직도 귓가에 묻어 있다. 그 회사의 정보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어도, 아니 늦었지만 독촉 전보를 받자마자 생각만 바꿨더라도 코펙에 갔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장고를 심하게 해도 가문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은 그로부터 한 이십년 지난 뒤였다. 왜 당시의 나에게는 코펙 인사부장이 가진 혜안이 없었을까.

이밖에 패션 회사 서광에서도 통지서를 받았고 김선홍 회장이 소하리에다 봉고차 신화를 마구 만들어 가던 기아산업에도 최종 합격을 했다. 당시 기아산업의 봉고차는 망해가는 기아 가문을 일으켜 세운 효자였으며 ‘봉고차가 김선홍이며 김선홍이 바로 봉고차’라는 등식을 만들며 명성을 날렸었다. 광명 소하리 동네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종업원들을 설득하여 봉고차를 만들었던 열정과 탁월의 김선홍이었지만 과도한 투자는 독이 든 성배였을까 훗날 IMF라는 칼바람을 맞고 재계에서 사라졌고 회사는 경쟁사였던 현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또 그해 섣달 하순에 날아온 광장전신전화국 우편물 중에는 노란 전보용지에 타타타타 찍은 효성그룹의 합격 통지서도 들어 있었다. 요즘 같으면 카톡이나 이메일 메시지로 연락을 했을 것인데 그때는 아날로그 전성 시대였다.

전동 타자기로 찍은 노란 전보용지를 보니 취업하느라 동분서주하던 때가 실감나게 떠오른다. 효성은 경남 창원으로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정감 어린 편지도 함께 동봉했다. 여기저기서 취업증을 받고 들떠 있던 사이 방송기자, 종합무역상사 등은 놓쳐버리고 말았다. 별 시답잖은 옛 이야기 한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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