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7)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7)
  • 안산뉴스
  • 승인 2020.07.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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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당(淸聞堂)

청문당은 안산시 상록구 청곡길 77 부곡동 ‘개멸마을’에 위치해 있고 진주유씨 16세손 유시회(柳時會, 1562~1635)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충북 괴산에 살고 있었는데 유시회의 조카 적(頔)이 선조의 아홉번째 부마(정정옹주의 남편)로 정해진 후 아버지 시행(時行)이 세상을 뜨자 사위가 한양에서 괴산까지 3백리 길을 왕복할 것을 걱정하여 1백리 안쪽에 묘터를 잡으라는 선조의 명에 따라 부곡동 ‘새터’라는 곳에 묘를 정하였다고 한다.

이후 진주유씨는 넓은 사패지(賜牌地)와 안산 바닷가의 어염권을 기반으로 이곳에 세거하여 왔으며, 이후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여 조선시대 중기에는 기호남인(畿湖南人) 3대가문의 하나로 손꼽히게 됐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남인 문사들이 이곳에 모여 교류하였다. 특히 청문당 만권루(萬卷樓)의 수많은 도서는 기호남인들의 학문적인 기반이 됐다.

이 집은 앞마당에 ㄷ자의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역 ㄱ자의 안채와 일자형 아래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트인 ㅁ자 형식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 동북쪽에는 사당이 위치하고 있고, 뒤뜰에는 화계(花階)가 조성되어 있고 화단의 한 가운데는 안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큰 모과나무가 남아 있다. 집 앞에는 오래된 연지(蓮池)가 있었는데, 연지 동쪽에 바깥사랑채에 해당하는 하당(荷堂)이 있었고, 그 서쪽에는 현정(玄亭)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우물과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채는 팔작지붕이고, 그 위에 기와를 덮었으며, 안방 2칸, 대청은 6칸, 건넌방 1칸 반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안방 남쪽으로 부엌 칸이 날개처럼 달려 있는데, 대청 앞에는 툇마루를 뒀다.

사랑채는 서쪽으로부터 광 1칸, 일꾼방 1칸, 대문간 1칸 반, 사랑방 2칸, 서고 2칸이 배열되어 있고, 사랑방 전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두 건물 모두 가구는 전퇴(前退)는 5량(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은 나무인 도리가 5개) 형식이고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사당은 3칸 규모인데 3량가에 맞배지붕의 단순한 건물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트인 ㅁ자 형식으로 배치되어 안마당에서 외부로 직접 연결되는 중문이 있는 점은 경기지역의 민가에서 흔히 보여 지는 방식이며,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예를 따르고 있다는 점과 조선시대 주거문화와 정원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기도 고가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0년 4월 17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http://cafe.daum.net/ansa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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