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8)
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안산시문화유산이야기(28)
  • 안산뉴스
  • 승인 2020.08.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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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헌(醉夢軒) 오태주(吳泰周) 묘역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48 큰말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서는 일명 애기능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보통은 명안공주 능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오태주(1688~1716)와 그의 부인 명안공주(明安公主/1665~1687)를 모신 합장묘의 유택이다.

오태주는 자는 도장(道長), 호는 취몽헌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형조판서 두인(斗寅)의 3남이며, 어머니는 상주 황씨이다. 숙종 5년(1679) 현종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와 혼인하여 해창위(海昌尉)에 봉해졌고, 명덕대부(明德大夫)의 위계를 받았다. 이어 광덕대부(光德大夫)에 올랐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다.

숙종 15년(1689) 임금이 희빈 장씨의 소생인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 할 때 송시열 등이 반대운동을 일으키자 이에 찬동하여 책봉을 반대하는 의견을 올렸다가 관직이 삭탈되었으나 왕명에 의하여 직첩이 환급되었다. 4세 때 벽 위에 장지를 보고 그것이 임금의 글씨임을 알고 무릎을 꿇고 절을 했을 만큼 어려서부터 서예에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예서에 능했다.

그는 사람됨이 영민하고 밝으며 강직했다. 일찍이 향약을 만들어 곡식 수백 곡을 염출하여 이를 때에 맞춰 사고 팔아 제활(濟活)에 대비하도록 했다. 부인 명안공주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어 동생인 진주(晋周)의 아들 원(瑗)을 입양했다. 전해 오는 묵적으로는 행서체로 쓴 간찰이 다소 있으며, 금석문으로는 ‘오두인비(吳斗寅碑)’등이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명안공주는 현종의 셋째 딸로 어머니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이다. 숙종의 누이이며, 7세에 ‘명안’이란 작위에 봉해졌다. 타고난 성품이 정숙하고 아름다웠으며, 지조는 정정하고 그 덕은 온순, 공손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받들자 위 아래 모두가 기특하게 여겼다. 그러나 병으로 23세에 일찍 죽자 숙종이 의례를 갖추어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명안공주의 유품은 남편인 해창위 오태주 문중에 보관되어 오다가 강릉시립박물관에서 입수 관리하고 있는데, 1995년 45점의 유물들이 보물 제1220호로 지정됐다. 묘역은 명안공주와 함께 그 시어머니인 상주 황씨, 남편인 오태주, 그리고 아들인 오원의 묘가 열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다.

묘역 아래쪽에 재실(齋室)이 남아 있었으나 이 재실은 1997년 6월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됐다. 명안공주의 묘갈은 숙종 14년(1688)에 세워졌으며, 숙종 46년(1720)에 새긴 오태주 묘갈의 비문은 김창흡이 찬했다. 숙종 어제치제문비(御製致祭文碑)는 숙종이 명안공주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제문과 오태주가 죽었을 때 지은 제문을 새긴 비석이다.

마모가 심하여 일부의 글씨는 읽을 수가 없는데 그 내용은 대략 명안공주가 명성왕후의 셋째로 뒤의 두 누이들이 모두 일찍 죽어서 슬프다는 내용이며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것이다. 오태주의 제문에도 그의 재주를 기리고 일찍 죽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2003년 4월 21일 경기도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9)

-daum cafe–안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http://cafe.daum.net/ansa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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