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성 소설 ‘목불’ 한국문학상 받다
신상성 소설 ‘목불’ 한국문학상 받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11.28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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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눈동자 찾아 방랑하는 과정 그려
인과응보 통쾌함, 근원적 인성회복 제시
신 작가 40여년간 중장편 70여편 발표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문효치)가 시상하는 한국문학상(55회) 수상자로 소설집 ‘목불(木佛)’을 낸 신상성 소설가가 최근 선정됐다.

신상성의 소설집 ‘목불’은 젊은 승려 ‘법매’의 처절한 고행 길을 뒤좇아 가는 이야기다.

산에서 내려온 주인공은 대중 속에서 서민들 틈에 끼어 고통을 같이 한다. 어쩌면 혼자 몸이기 때문에 더 처절한 세상의 창끝이나 칼끝을 온 몸으로 받아낸다. 아니 일부러 불 속에 뛰어들어 복싱선수로 링 위에 올라가기까지 한다.

법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눈동자를’ 찾아 전국을 방랑한다. 그것은 국전에서 처음 부딪힌 그 ‘목불’과 같은 눈동자를 찾는 수행과정이다. 스승의 하명에 의해 수행승으로 진실된 눈동자를 찾아 만행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부처님 같은 진실한 눈동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법매는 WBA 세계복싱챔피언대회에서 상대선수를 KO시켜 결국 죽이게 된다. 허가받은 살인이다. 깊은 번뇌에 빠져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찾기는커녕 오히려, 세계 유명 복서가 되어 살인자까지 하게 됐다. 양산 통도사 조실 스님의 낮고 낮은 목소리가 솔바람 소리로 외마디 장단을 친다.

…독사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막는 것같이 분노의 불길을 잡아라! 잡아버린 사람만이 모든 집착에서 멀리 떠날 수 있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혼자 가거라!...

작가 신상성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 당선(1979) 이후 약 40년 간 평생 낙서를 해오면서 70여 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어떤 유형이나 유행을 초월하는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홍기삼 문학평론가는 ‘처용의 웃음소리’ 서평에서 “신상성 소설은 내용보다도 형식에 있어 종종 예외적 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소설 분위기와 크게 일치하거나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다만 ‘신상성의 소설’이라는 느낌만을 남긴다. 어떤 작가의 영향권에 있다거나 유행성 감각이 강하다거나 하는 종류의 무수한 소설들과 단연 구별된다.”고 평했다.

일본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아사히신문 한국특파원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고노에이찌 교수는 ‘신상성 문학론’에서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치열한 삶”(월간문학 2006.10월호)이라는 특징을 잡아냈다.

“신상성의 ‘중국 장백산 국제문학상 수상작(2000)’인 ‘인도향’ 등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실의 수기’가 러시아 대문호 작품의 과도기였던 것처럼 신상성 문학의 과도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과도기를 알면 그 전반기 작품들을 이해하기도 쉽다. 신상성 문학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 작품에 응축되고 있는 것 같다.”

신상성과 1980년대 초기 동국대 대학원에서 같이 수학했던 고노에이찌 교수의 평은 이렇다.

“신상성의 문학은 인간이, 그것도 알몸이 된 인간이 진지하게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과 대치하는 현실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세계다. 그의 문체는 헤밍웨이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하드보일드 터치의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다. 사태를 간결하게 파악하면서도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여유 없는 현대인의 생리, 그대로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상성 소설에서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황폐하게 메마른 땅에서 조금이나마 획득한 그의 문학적 성과를 보다 더 무겁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신 작가는 1980년대 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신상성 소설 ‘원위치’를 일어로 번역 발표했다.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 극심하게 탄압 당했던 당시 일화를 덧붙였다.

“당시 소공동 입구에 있던 ‘대한일보사’ 건물 5층에 ‘소설문예사’가 있었다. 나는 한 달에 3편 정도의 소설을 번역했다. 점점 발표선정도 손수하게 됐다. 신상성의 ‘원위치’(1981)도 사장의 체크 없이 스스로 선정해 인쇄되고 나중에 당국의 검열을 받게 됐다. 이때는 어떤 시대였을까? 바로 광주사태 직후, 민주화 운동이 극심하게 탄압 당했던 시기였다.”

군인주도의 서슬 퍼런 검열기관은 ‘원위치’에 나온 전략 용어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그 다음엔 한국군대를 풍자하는 듯한 내용에 화를 냈다. 그리고 계엄사령부에서는 ‘이런 내용을 해외로 알리려고 한 ‘소설문예’ 잡지는 폐간시키고 번역자는 국외로 추방하라’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사장이 작품을 게재 안하는 것으로 이 문제가 극적으로 일단 수습이 됐다.

“그러나 그때까지 한 나라의 청년으로서 나(고노에이찌 교수)의 양심적 고민은 극심했다. 외국인 한국 군사정권과의 국가권력 차원에서 처음으로 처절한 대치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국가권력과 처음 대치해 본 나는 그만큼 복수 심리도 오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인쇄된 교정지를 간직하고 나중에 일본에 귀국한 후 ‘와세다문학’ 잡지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일본 순수문학지에 한국소설이 소개된 일은 거의 없었다. ‘원위치’는 나의 오기로 소개된 아주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월간문학 2006.10월호) 신상성 문학론에서).

지금도 작가 ‘신상성’은 외롭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이 작가의 길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문학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초월해야 하며 거기에 아부해서는 안 된다. 우주적 세계성과 보편성을 가지려면 외톨이가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가 뒤늦게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부시절 스승인 조연현 한양대 교수(당시 한국문협 이사장)를 다시 재회한다. 그의 수제자였던 신상성의 첫 소설집 ‘처용의 웃음소리(동호서관 1981)’에 스승은 다음과 같이 머리말을 썼다.

“신군의 석사학위 논문이 ‘우리나라 중편소설의 구조적 연구’였는데 학위를 받은 다음 여기에 관한 평론을 다시 나에게 가져왔다.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이어서 내가 ‘현대문학’에 발표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신군은 작가에의 길과, 평론가에의 길과, 학자에의 길, 세 가지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자기 가슴을 가리키면서 소리친다. 아직도 자기 가슴에는 뻥 뚫린 바람소리만 들린다며 웃는다.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세상은, 사기와 배신의 악성무좀으로 까맣게 덮여 있다. 사악한 자들은 회전문 같은 권력과 금력을 회전문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확실하게 죄 값을 받아야 할 때다. 언제까지 선한 자들이 피눈물로 생을 마감해선 안 된다. 그래서 여기 ‘목불’에서는 인과응보적인 통쾌한 보복 그리고 근원적 인간성 회복을 제시해 봤다.”

이제 세상을 놓아버리자고 해도 놓아지지 않는다. 좀비 같은 욕심 때문일까. 작가는 예외적으로 온·오프라인 두 개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용인대 등 평생 교육계에 있으면서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단다. 인간과 사회와 세상에 대한 처절한 분노, 혐오, 절망을 망치질 당했다고 외친다.

그는 그러나 두 손을 높이 쳐들며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고 했다. “아, 인두불로 내 온 몸을 지져대는 고통을 받아왔다. 이제 나도 니체 같은 철학가 또는 도스토옙스키 같은 문학가 흉내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을까?”

그는 프로이트, 라깡, 들뢰즈의 한숨 소리가 한강 양수리 남북 물결이 부딪치며 내는 함성소리를 흉내 내며 10여년 만에 또 하나의 절망노트 ‘목불’을 내놓았다. 이 작품이 금년도 ‘한국문학상’을 움켜쥐게 된 것이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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