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거목 이건희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거목 이건희
  • 안산뉴스
  • 승인 2020.10.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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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안산학연구원 학술연구센터 소장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고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그는 거시적이며 글로벌한 리더십을 지닌 거인이었다. 사람 즉 인재경영의 확고한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혁신을 통한 창조경영으로 기업을 세계 초일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럼 고인의 확고한 경영철학은 무엇에 기인했으며 그 철학이 형성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노력 없이 유산이나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 탕진하기 쉽다는 의미로 실제 지인이나 뉴스를 통해 간간이 접하기도 한다. 노동의 의미와 돈의 가치를 절감하지 못한 결과의 탓이다. 반면 지속적으로 부의 패권을 대물림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최치원의 경주 최씨 가문은 300년간 12대를 거쳐 만석꾼의 전통을 이어왔고 또 세계 금융 패권을 쥔 유태인의 부의 계승은 2차 대전 이후 현재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영속적 부의 비밀이 무엇일까. 인간은 본디 편함을 추구한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필수적인데, 전자의 경우 선조에 의해 조성된 부의 환경이 후대가 노력 없이 상속받은 경우라면, 후자는 의식적으로 시도된 교육의 결과이다. 학문의 조애가 깊은 경주 최부자 가문의 가훈(1년에 1만 섬 이상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지 말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은 공정과 나눔의 교훈으로 유명하다. 한편 유태인은 가정교육(금융·토론·외국어)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넓히고 근면과 절약의 열매로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실천한다.

인재는 교육을 통해 양성되고 학습과 체험 그리고 환경이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위 최부자와 유태인의 성공사례는 자녀교육에 있었다. 자녀교육은 학문에 앞서 부모의 삶을 통해 전수된다. 고인 이건희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부유한 천석꾼의 집에서 태어났다. 초등시절까지 할머니 손에 키워진 그는 중학교 시절 일본에서 조기유학을 했고 서울사대부고 졸업 후 와세다 대학과 조지워싱턴대에서 MBA로 견문을 넓혔다. 부친의 사업경영으로 산업체험을 했고 영화와 기계조립의 관심으로 입체적 사고를 키웠다. 본격적으로 1970년대에 실리콘벨리 현장에서 반도체 사업에 대한 자극을 받아 밑그림을 그렸다.

46세에 본격적으로 2세로서 사업경영을 책임진다. 그는 초일류 기업을 주창하며 변화 혁신적 사고를 강하게 요구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산업기반 패러다임에 선친이 해온 시스템경영은 구시대의 산물이고 창조경영으로 전환해야 살아남는다고 주창했다. 2차 산업에서 3,4차 산업구조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선친의 반대와 미국과 일본이 미적일 때도 반도체 D램 사업에 승부수를 걸었다. 프랑크푸르트 임원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놀아도 좋으니 뛰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마라“며 혁신적 인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확신과 ’신상필벌‘을 강하게 주지시켰다. 이후 글로벌시장에서 1991년 11월 세계최초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이 7500달러에서 100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미래지향적 사고와 효율성을 강조한 경영철학에서 기인한 성과였다.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된 경쟁력은 업무의 1/2 이상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인재경영에 있었다. 즉 인재 육성 전략이다. 삼성 창업 1세대 고 이병철회장의 조국의 근대화, 2세대 고 이건희 회장의 초일류 세계화 기업은 대한민국 경제 또한 견인했다. 성장의 핵심은 교육이었고, 미래성장의 거시적 안목 또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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