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털어내고자 봉사합니다”
“잡념 털어내고자 봉사합니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18.12.12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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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 거주하는 최인순(85) 옹

“어디 다녀 오신거에요?”

“제천에 갔다 왔어요. 딸이 어머니 쇠고기 사주어서...”

“사모님 잘 드시던가요?”

“아주 잘 먹어요.”

“잠은 어디서 주무셨어요?”

“시골이라 모텔에서 잤어요.”

인터뷰 때문에 시간에 쫓겨 급하게 올라오신 것 아닌가 염려됐지만 그렇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사동에 사는 최인순 옹(85). 3살 터울인 사모님은 지난 2002년 뇌출혈로 몸에 마비가 와서 집 근처에 있는 노인전문요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최인순 옹께서는 16년째 하루 두 번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양원을 찾는다. 아침 7시에 요양원에 들러 아침 드시는 것을 돕고 낮 시간에 볼일을 보신 후 오후 4시쯤 다시 요양원에 들러 저녁식사와 약 드시는 것을 돕고는 집으로 오신다.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이 “저런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라며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 그대로 열부(烈夫)이시다. 다시 태어나도 사모님과 다시 결혼하겠냐고 여쭈니 부끄러워하시며 “그럴 것이다”고 대답하신다. 무엇이 최인순 옹 마음에 그런 사랑의 마음을 심어놓은 걸까? “군에 갔다 와서 아버지를 여의고 3년 상주를 했죠. 상주를 마치고 나니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의 중매로 지금의 팔곡동에 살던 아내와 결혼했지요. 장모님께서 나 혼자 살던 집 부엌 밥솥을 열어봤는데 젊은 남자가 밥을 해먹는지 안 해 먹는지 모를 정도로 솥이 깨끗하니까, ‘남자가 까다롭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나는 처가가 천주교 신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아내는 결혼 후 1년에 11번 지내는 제사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지내더라고, 심지어 내가 돈 벌러 외지에 나가 있을 때조차도 (제사를 정성으로 지내더라고요) 그런 아내를 내가 사랑해야 자식들도 어머니한테 잘하죠.”

“아버지께서 일본 징용을 피해 다니느라 집이 풍지박살 났고, 그 때문에 나는 서울 친척집에서 살다가 6.25가 발발하자 아버지께서 사시던 안산으로 피란을 와 안산사람이 됐다.”는 최인순 옹. 그 때가 16살이었으니 70여년을 안산에 사시면서 안산의 현대사를 함께 지켜보셨다. 그래서일까? 안산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더 각별하다.

70년 전 안산과 비교하면 지금의 안산은 상전벽해라는 최인순 옹의 안산사랑을 보여주는 하나가 안산학연구원 활동이다. 지난 2007년 안산학연구원에서 활동하던 기자에게는 안산학연구원이 운영하는 안산학시민대학 3기생으로 지원한 70대 노인으로 최인순 옹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수강생 모집광고를 한빛방송 자막으로 내보냈는데 최인순 옹께서 그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내러 왔었다. 안산학시민대학 1천200여명의 동문 중 자진해서 지원한 사람이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한 번도 수업시간에 늦지 않고 한차례 결석도 없이 수료했고, 수료 후 지금까지 안산학연구원이 주최하고 주관하는 행사에 빠지지 않고, 후원금까지 내는 모범을 보여 지난해 안산학연구원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최인순 옹은 자기계발에도 적극적이다. 팔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안산문화원에서 서예반 활동을 하면서 안산단원미술대전과 경기도대회, 전국대회에 꾸준히 출품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상이 어떤 상이냐고 여쭈니 “신통한 상은 없다. 출품하면 주는 상이 다다”며 겸손해한다. 작품 몇 점을 액자로 만들어 거실에 걸어 놓았는데, 초중학교 시절 서예를 했던 필자의 눈에는 세심하고 정직한 필체가 10년간 붓을 잡은 실력임을 눈치 채게 한다. 최인순 옹은 안산시 평생학습관 한숙당(漢熟堂) 활동도 10년 이상 해오고 있다. 한문을 익히는 동아리인데 요즘은 시경을 읽고 있다. 시경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다. 한국사회교육진흥원에서 시행한 인성심리상담사 국가자격증도 취득했다.

최인순 옹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도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다. 단원보건소 안산중독관리통합센터 제1기 건전음주 서포터즈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술과 담배, 컴퓨터 중독 근절을 위한 홍보활동에 열심이다. 안산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운영한 제3회 투명사회 아카데미를 수료했고, 연간 300시간 이상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안산시자원봉사센터 VIP 우수자원봉사자와 경기도 우수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활동들은 부인께서 뇌출혈로 투병중이던 2004년, 최인순 옹께서 칠순이 넘어서 도전해 성취한 활동들이다. “아내가 아프니까 고민이 많아지고, 이 고민과 잡념들을 털어내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떼려야 뗄 수 없게 되고 봉사활동에 더 깊이 빠지게 되더라”며 “사람마다 운명이 다르지만, 2003년 수술을 한 허리가 현재 척추협착증을 앓고 있는 것 이외에는 건강하니 건강 하나는 잘 타고 났다”는 최인순 옹은 젊은 시절에도 사회참여 활동에 적극적이셨단다.

마을 문맹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대학생들을 농촌으로 불러 농촌봉사활동을 하게 했다. 서울에서 16살에 내려와 선친께서 경작하던 남의 논 2천400평 농사를 지어 쌀 24가마 정도를 수확했던 당시를 떠올리던 최인순 옹은 어느새 눈시울이 젖어든다. “1·2차 세계대전과 6.25를 겪으며 1.4후퇴를 경험한 세대로 모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생각에 농촌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최인순 옹께서 가문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조상들의 묘역을 향토유적으로 지정 받는 것이다. 최인순 옹은 고려말 태부(현재 국무총리)를 지낸 양주최씨 최억의 24대 손이다. 철원도호부사와 영종첨사를 지낸 최선태의 조부 최정언, 부친 최두의 묘역이 사동 늦은구지(晩花串)에 조성되어 있다. 사동은 양주최씨의 오랜 세거지로서 안산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양주최씨의 안산 입향조 최혼 선생을 모신 양주최씨 묘역과 병자호란 때 순절한 충장공 최정걸 장군의 묘역도 조성되어 있다. 최인순 옹은 안산시향토유적지로 지정을 받지 못한 최선태, 최정언, 최두 등 조상들의 묘역을 안산시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달라며 작년부터 안산시에 심의를 요청해놓고 있다. “자랑스런 조상들의 삶을 지키는 것은 후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사람이 주먹을 쥐고 태어나는 것은 욕망을 움켜잡는 것이고 두 손을 쫙 펴고 죽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랍니다. 내려놓으니까 편해요.” 부인의 투병생활이 오히려 잡념을 털어내는 계기가 됐다며 자유로우면서도 평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최인순 옹. 85세의 연세에도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사시며 지극정성으로 부인을 대하는 삶에 젊은 기자는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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