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안산뉴스
  • 승인 2021.01.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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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지난 밤에는 펄펄 눈이 내렸습니다. 모처럼 아파트 단지에 활력이 넘쳤습니다. 팔짱을 끼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는 중년의 부부, 컴컴한 밤을 웃음소리로 채우며 눈싸움 하는 아이들, 목도리와 모자까지 옆에 두고 진지하게 눈사람을 만드는 가족들. 관계와 만남을 축소한 단일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하얗게 내리는 눈은 오랜만에 마음 편히 만나는 낭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새 해, 눈의 낭만과 달리 지난 한 해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됐고 2019년 9월 발생한 호주의 산불이 해를 넘겨 2월에 진화됐습니다. 국내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라 일컬어지는 폭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성을 도구삼고 성 상품화한 n번방 사건, 8살 동생을 사망으로 몰고 간 인천의 화재 사건,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도 지난해의 일이었습니다.

자연은 전염병으로, 화재로, 홍수로 인간에게 말을 건네고, 여성, 어린이, 노동자는 여러 사건 사고로 여전히 그들이 사회의 약자임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책임을 온전히 전가할 명확한 혹은 불명확한 대상이 정해지고, 그들을 향한 분노와 비판은 언론의 지면과 SNS의 글들로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울 것 없이 대상과 공간과 시간만 달리하고 반복되는 사건들에 대해 역시나 주체와 공간과 시간만 달리하고 매년 반복되는 비판과 분노였겠습니다.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정인이도 그랬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정인이 이름을 딴 법을 앞다퉈 발의했고, 분노는 부모의 신상 뿐 아니라 조부모의 신상도 노출했습니다. SNS에는 학대 부모를 향한 감정의 언어들이 여과되지 않은 채 흘러다녔습니다. 그만큼 분노와 비애가 컸다는 의미입니다.

악마는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발 떨어져 심판하고 정죄하는 판관이 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자본주의와 바로 그 기업이 훼손했고, 여성은 바로 그 남성이, 어린이는 바로 그 어른이, 노동자는 바로 그 자본가가 훼손했습니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분노지만 온통 옳기만 한 분노와 슬픔 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그 폭력이 가능토록 한 마지막 사람 뒤에는 어떤 과정들이 길을 놓아주었는지, 나의 침묵은 어디서 그 길이 되었는지요.

이른 결혼과 육아와 밥벌이로 휴학을 반복하던 학생이 졸업 학기를 앞두고 학교를 그만둘 때도, 부모의 원조를 받지 못하는 학생이 1년의 돈벌이를 위한 휴학과 돈벌이 만큼의 1년짜리 복학을 반복하던 때도, 홀어머니 병수발로 곁을 지켜야 하던 학생이 휴학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던 때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능력들, 그러니까 먹고 자고 입고 누군가를 돌볼 돈이나 능력 또는 무언가를 배워 한 사람 몫을 해낼 능력과 돈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어서 돈과 능력 없는 불은은 연민하고 함께 울어도 결국 개인의 몫일 뿐, 그래도 되는 것일까 질문은 되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8살, 10살 화재로 두 아이 중 한 명이 죽었습니다. 8살 아이를 잃은 31살 된 젊은 엄마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기사도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을 돌려, 나이가 어리고 돈이 없어도 편견의 시선 없이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면 우린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겠니. 선택은 네 몫이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 말은 얼마나 많은 나의 학생들과 알지 못하는 나의 이웃들에게 닿았을지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도록 한 무감의 언어들이 짧겠지만 또 오늘 하루는 부끄러움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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