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장님 보호법’이 아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장님 보호법’이 아니다
  • 안산뉴스
  • 승인 2021.01.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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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 안산더좋은사회연구소 사무국장

기업이 안전의무를 위반해 노동자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침해한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 위한 법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이 법이 오랜 시간 국회에서 표류하는 동안 계속해서 일하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그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문턱을 넘었고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11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가 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지 28일 만이다.

법의 내용을 보면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물리고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여러 명이 크게 다친 산업재해의 경우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형이나 1억 원이하 벌금형에, 법인은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각각 처해진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3년의 유예기간을 준다고 한다. 법 시행 시기는 공포 뒤 1년 뒤로 잡았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한다.

중대시민재해의 처벌 대상에서는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업소 등이 제외된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이 손해를 배상할 때 한도액도 ‘손해액의 5배’로 제한됐다. 애초 발의안에 있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나 공무원 처벌 특례규정 등은 논의 과정에서 없애기로 했다.

어렵게 한 단계 나아간 이 법안에 대해 노동계와 유족들은 입법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합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체의 80%를 차지하는 5명 미만 기업은 법 적용을 받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은 법 시행 후 3년간 적용을 유예하게 된다. 노동자의 안전 보장이 늘 뒤로 밀려 산업재해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해 이르게 했을 때 책임을 묻는 양벌 규정에 하한선을 아예 없앴다는 것이 문제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실제 경총이 경영책임자 처벌에서 “형벌은 하한선을 삭제하고 상한선만 명문화하자”고 꾸준히 요구해 온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법은 존재하지만 결국 낮은 처벌만 나올 수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리고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당초 제기된 ‘대표이사 및 이사’라고 명시한 부분을 삭제하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수정했다. 이는 기업에서 안전보건 담당자를 방패막이로 세워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피해가도록 편법의 기회를 처음부터 만들어 준 것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법으로 매일 6명, 매년 2,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 잃는 가슴 아픈 이 사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법은 만들어지겠지만 결국 또 재해를 유발하고 그 주범들이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상상될 수밖에 없다.

유가족들은 다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모든 노동자들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제정하라는 것이 유가족의 그리고 국민의 마음이다. ‘사장님 보호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법을 만들라는 비판의 목소리와 호소에 국회와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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