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즘찬 이야기의 힘
아즘찬 이야기의 힘
  • 안산뉴스
  • 승인 2021.03.23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워크 회장

우리에게는 일명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알려진 ‘천일야화’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의 설화를 골자로 하여 이슬람 세계 각지의 설화들이 융합되어 16세기경에 거의 현재 형태로 완성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에게 탈무드가 있다면 이슬람에게는 천일야화가 있는 셈이지요.

이 이야기는 페르시아의 샤리에르 왕이 자신의 왕비가 흑인 노예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왕은 왕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인해 매일 처녀와 결혼하고는 다음 날 죽이기를 3년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러한 왕의 끔직한 만행에 온 나라가 공포에 떨던 중 세헤르자드라는 여자가 왕과의 결혼을 자원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녀는 결혼식을 마친 후 잠자리에서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그만 왕이 이 이야기에 푹 빠져 들게 됩니다. 그래서 왕은 매일 밤 지속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의 죽임을 하루하루 미루게 되었고 그 날수가 무려 천일 하고도 하루가 되지요. 결국 왕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세헤르자드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도 끝을 맺게 됩니다.

천일야화는 마치 여러 개의 인형이 겹으로 포개어져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와 같은 액자소설 구조로 되어 있답니다. 제일 겉면에 위에서 살핀 샤리에르 왕과 세헤르자드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안에 세헤르자드가 밤새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또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형식이지요. 서사학자 츠베탕 토드로프는 천일야화의 이러한 독특한 구조와 함께 각각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모티프 역시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 이야기가 성공적이면 (서사가 존재하면) 위기는 극복되고, 그렇지 못하면(서사가 부재하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헤르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듣던 샤리에르 왕이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배반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받으면서 결국에는 세헤르자드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지요. 즉 서사가 왕과 함께 수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천 하고도 하나’라는 숫자는 이슬람 문화에서 영원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서사가 지속되는 한 삶도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처럼 이야기는 무척이나 힘이 세답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비록 본인들 자신은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왔음에도 자녀들을 위해 전집으로 책을 사며,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씩 빌려다 어떻게든 자녀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야기의 힘이 크다는 것은 반대로 나쁜 이야기의 폐해 역시 크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어디 책에만 있겠습니까? 지금 현재도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서라도 좋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책임 또한 있다 하겠지요.

아, 그런데 마침 감동스런 이야기들이 두둥실 우리 곁에 흘러오고 있네요. 가짜 증인들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혐의를 받는 동료 검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검사들이 뜨거운 동료애를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자녀 논문 작성을 위해 대학 연구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또한 성적이 안 되는 자녀의 대학 입학을 위해 교수들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다는 어느 엄마들의 헌신적 모성애 이야기가 들립니다. 또 자식에게 문제 있는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고 사자후를 토했다는, 음주 운전 뺑소니에 운전자 바꿔치기 혐의가 있는 아들을 둔 어느 정치인의 감동적인 양심선언 이야기가, 고위 목민관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과 직무를 이용한 사익 추구 정도의 사소한 허물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시장 출마 후보자들의 대범한 품성 이야기가 오늘도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늘 밤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게 될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 너무나 기대가 되어 말입니다. 정말로 아즘차고 아즘찬이한 이야기들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