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안 보이는 주민자치회5
길이 안 보이는 주민자치회5
  • 안산뉴스
  • 승인 2021.04.0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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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협동조합 이사장

안산시는 내년에 25개 전 동을 대상으로 주민자치회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시대적 흐름이고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는 주민자치회 실시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인력을 늘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굳이 통계를 내밀지 않아도 이미 많은 지역에서 좋은 사례들이 나타나고 공유되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생기면 행정이나 정치와 갈등하거나 밥그릇 싸움을 할 거라는 왜곡된 견해도 존재하지만 서로 역할을 분장하는 상생의 환경이 만들어질 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주민자치를 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불합리한 제도로부터 법률까지 고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있다. 주민의 총의가 모아지는 주민총회를 통해 민초인 주민들의 의견이 국가 운영에 반영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고 이는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데 국민들의 목소리가 대접받는다는 의미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찾아올 건데 기다리지 말고 참여해서 앞당겨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시의 방향과 다르게 시의회에서 주민자치회 전환과 관련한 조례를 통과시켜주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게 됐다. 예정대로라면 2021년 6월로 주민자치위원회가 해산되고 필수 기본교육을 이수한 주민을 대상으로 2022년에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동과 원곡동이 시범으로 주민자치회를 시작할 때, 행정안전부 표준조례안이 무시되고 권한 없이 의무만 남겨 유명무실하게 만든 전력이 있는 터라 무슨 사연으로 부결됐는지 이유가 몹시 궁금하다. 적어도 선거로 뽑힌 위임 권력자들의 자세라면 주민의 의중을 헤아리고 소통하면서 제도를 만드는 것이 기본일 텐데 어떤 주민들과 소통하는지 알고 싶고 이런 대접 받는 게 속상하다.

일동과 원곡동의 주민자치회는 무늬만 있는 처지다. 지원은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르지 않는 시범사업일 뿐이다. 2018년 일동이 행정안전부 혁신읍면동에 선정되어 주민자치회 전환을 명(命) 받았지만 안산에 조례가 없어 1년간 주민자치협의회와 행정, 전문가와 주민들이 연구모임을 만들어 다른 지역 사례와 표준조례안을 꼼꼼히 비교하며 안산의 실정에 맞는 조례를 만들었다. 자기 시간 들이고, 돈 써가며 활동 해주신 분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실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실제 조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컨데 교육시간, 참여 위원을 50명에서 30명으로, 8조 권한은 모두 없애고 5조 의무만 남기는 누더기가 됐다. 과정에 조금이라도 서로의 입장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면 절대 이런 조례는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심지어 조직의 체계를 담보해 줄 사무국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없앤다는 의견까지 첨부하는 것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8년 간 주민자치 활동을 하며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견디고 여기까지 왔지만 언제까지 이런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지 답답하다.

주민자치협의회는 지금 상황에 대해 당당하게 입장을 내야 한다. “옛다 먹어라 하면 먹고 안주면 굶어야 하는 것인가!” 어느 시의원은 주민자치 공개 토론회 20분 전에 아무 이유 없이 안 나오겠다 해도 항의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심한 자괴감이 든다. 협의회가 친목 단체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길이 있을 때만 가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협의회를 만든 것이다. 각 동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선임단체라 하여 앞세우고 대접하다 보니 과거 동정자문위원회 때부터 다른 주민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길만 하다. 그래서 마을마다 길을 막고 일을 망치는 단체로 규정되는 경우도 많다.

민망한 일이지만 내성이 생겼는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권한을 가진 단체의 대표로, 임원으로 누가 뽑아줬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추대했더라도 기껏해야 20여명 정도일 뿐이다. 필자도 현역 주민자치회장이지만 우리 마을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주민자치의 길을 찾고 생각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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