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먹힐 때 쾌감을 느낍니다”
“기술이 먹힐 때 쾌감을 느낍니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18.12.19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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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화 여자천하장사(안산시청 씨름단)

안산을 빛내는 스포츠 선수 중에는 김연경(배구), 김광현(야구), 이인국(장애인 수영) 선수 등 여러 명이 있다. 김연경 선수를 중학교까지 지도한 김동렬 원곡고 배구감독은 “김연경 선수는 지금도 어느 소속팀에 속해 있든지 간에 본인을 만들고 키워준 안산시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안산에서 초·중·고를 나온 SK 와이번스 투수 김광현 선수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구호기금으로 1천만 원을 기부했다. 세계신기록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장애인 수영의 이인국 선수는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때 마다 이름 앞에 ‘안산의 자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처럼 종목 최고의 선수들은 존재만으로도 출신지역 이름을 빛낸다.

올해 들어 안산을 빛내는 선수가 씨름에서 탄생했다. 수년간 ‘여자 이만기’로 불리는 임수정(34, 콜핑) 선수의 독주시대를 멈추게 한 최희화(27) 선수다. 안산시청이 소속팀이자 아버지가 안산에 살고 있는 안산의 선수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여자천하장사 결승전(3전2선승제)에서 임수정 선수를 2대 1로 이기고 생애 첫 여자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기자는 첫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침에 거북이 운전을 하며 안산시청 씨름단 사무실이 있는 옛 상록구청을 찾았다. 조경덕 감독과 김기백 코치, 최희화 선수가 기자를 맞이했다. 아침 인터뷰라 분위기가 좀 딱딱해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여자 이만기’ 임수정 장사를 두 번 연속 이겼으니 최희화 선수가 ‘여자 강호동’이란 이야기인데 그런 비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웃을 줄 알았다. 그러나 최희화 선수는 “혹 자만심이 들까 봐 경계한다. 저는 집중하고 조급해야 성적이 잘 나오는 스타일이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지한 답변을 내놓는다.

조경덕 감독은 “성실하고 운동 욕심이 많아 운동을 자제시킬 정도다. 승부욕이 강해 경기에서 지면 달래기가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경기에서 지면 어떻게 하기에 그러느냐고 물으니 “진 것이 분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운다”며 그 때서야 살짝 웃는다. 안산시청 씨름단은 남자선수 7명과 여자선수로는 매화급(60kg 이하) 최강자인 이연우 장사와 최희화 선수 둘 뿐이다. 최희화 선수와 이연우 선수는 안산시청 씨름단에 지난 1월 입단한 동기다. 숙소에서 한집 살림을 하고 있는 이연우 선수 역시 “희화는 악바리 기질이 강하다. 지기 싫어한다.”고 말한다.

최희화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유도선수 생활을 해왔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2014년 말에 씨름으로 전향을 했다. 천하장사 출신의 이태현 용인대 씨름팀 감독이 최희화 선수의 재능을 알아보고 씨름을 권유했던 것이다. 최희화 선수는 당시 후배에게 패한 후 찾아온 슬럼프를 겪다 보니 실업팀에 갈 성적이 안됐고 부상을 겪고 있던 때였다. 졸업 후 들어갈 실업팀이 없으면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 평생 운동만 해온 최희화 선수에게는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유도 국가대표 코치인 장성호 용인대 교수와 아버지 등 주변에서는 씨름 전향을 반대했다. 최희화 선수를 받아 줄 실업팀을 좀 더 기다려 보고 안되면 고등학교 지도자가 되는 것을 권유했다. 최희화 선수 역시 운동선수로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씨름에 입문하는 것이 위험천만한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씨름이 유도와 비슷하다는 사실 하나를 위안삼아 13년 유도생활을 접고 씨름 새내기가 됐다.

어렵게 결단한 선택이었지만 전향 후 과정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입단하기로 한 팀의 창단이 무산되면서 첫 1년은 소속팀 없이 경기도 생활체육 선수로 어떤 도움도 없이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다. 동호인들 훈련 장소를 찾아다니며 씨름을 익혔고, 고정 수입이 없어 마트와 공장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몇 차례 실업팀의 창단무산 소식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던 최희화 선수에게 안산시청 조경덕 감독이 구세주가 됐다. 평소 최희화 선수를 눈여겨 보아 온 조경덕 감독이 올해 초 여자팀을 만들면서 최희화 선수와 이연우 선수를 영입했다. 성실한 훈련과 승부욕이 강한 최희화 선수가 조 감독과 김기백 코치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고 안산시의 안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경기를 할수록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 갔다.

다른 선수들 보다 늦게 씨름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최희화 선수는 더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배우는 것도, 대회에 나가 이길 때 느끼는 재미가 크다. 또 연습할 때 익힌 기술이 먹힐 때 내가 쏟은 땀방울의 쾌감을 느낀다”며 활짝 웃는다.

최희화 선수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가족으로는 혼자되신 아버지와 언니, 여동생이 있다.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최희화 선수는 전국대회에 출전 중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충격 받을까봐 걱정이 돼 어머니의 부음을 알리지 않고 장례를 준비했다. 그러나 아버지 친구의 귀띔으로 가까스로 장례식에 도착해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최희화 선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도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당시 지도자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며 감사해한다.

조경덕 감독은 “최희화 선수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효녀라는 사실이다”고 들려준다. 얼마나 효녀길래 그러시냐고 물으니 “무뚝뚝한 아버지를 웃게 만들고 금전적으로도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언니와 동생한테도 참 잘한다. 모든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고 딸 자랑하듯 최희화 선수를 칭찬한다.

최희화 선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주에서 지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안산에서 살았지만 운동선수의 특성상 소속학교와 소속팀의 숙소에서 생활하는 탓에 안산에서의 추억이 많지는 않다. 안산에서 난을 키워 파는 일을 하고 있는 최희화 선수의 아버지는 올해부터 효성스런 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운동신경이 있었데요. 육상과 볼링을 잘하셨다는데 제가 두 분의 운동신경을 닮았겠죠.”

최희화 선수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선수로 뛰고 싶다며 “기술과 인성 모두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 씨름에서 성실함과 근성으로 따낸 천하장사 타이틀과 효녀 최희화라는 타이틀이 영원하길 응원하며 ‘안산 출신 효녀 천하장사 최희화’라는 수식어를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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