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사라져 가는 ‘십시일반’의 미덕
(수필)사라져 가는 ‘십시일반’의 미덕
  • 안산뉴스
  • 승인 2018.12.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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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갑자기 닥쳐온 한파로 겨울다운 연말을 보낸다. TV를 켜니 이웃돕기모금 캠페인이 한창이다.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며 전국 네트워크를 동원한 생방송은 훈훈한 입김을 안방에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날 모금에 응한 사람과 금액은 엄청난 숫자라고 한다. TV매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점화장치만 있으면 우리민족의 이웃사랑은 요원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겨본다. 매년 이맘때면 거리에도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해 행인들의 성원을 기다린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그 성원의 호응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선조들만큼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정신이 몸에 밴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낱말 가운데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십시일반은 한 숟가락씩 열사람이 모으면 한사람의 끼니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면 딱하고 어려운 이웃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 낱말을 자주 쓰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문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분께서 한자의 뜻을 알리는 없었겠지만, 그 개념은 분명히 터득했기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말 이전에 체험을 통해서 알았지 않나 싶다.

우리 조상들이 이웃돕기 정신이었던 십시일반이란 말도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서인지 요즘은 없어진 말이 된 것 같다. 살기가 각박해진 탓도 있겠으나 어쩐지 전통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물론 십시일반을 행하는 것이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십시일반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는 십일조 헌금도 이런 저런 구실로 거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사의 의연금 모금이나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단 돈 몇 푼도 익명으로 응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이런 주제에 이웃돕기 운운 하는 것 자체가 외람된 일이어서 부끄럽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평소 내가 본을 받고 싶어 하는 한 쌍의 맞벌이 부부가 있다. 그들의 이웃돕기 모습을 볼 때면 은근히 부럽기 짝이 없다. 남편은 40대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샐러리맨인데, 부인은 교회 성가대의 반주를 맡아 봉사하고 있으면서 집에서는 피아노 교습선생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부부의 한 달 수입은 많아야 줄잡아 4백만 원 안팎이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들은 매월 십일조로 40여만 원을 내고, 감사헌금을 비롯해 해외선교헌금 등으로도 수 만 원을 더 헌금하는 모양이다. 요즘 부인은 서예에도 취미를 붙여 구청 문예반에 등록해 글씨 쓰기 연습에 열심이라고 한다. 이들 부부를 오다가다 만나보면 늘 웃는 모습이다. 얼굴에 행복이 넘쳐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부럽다.

연말이웃돕기 캠페인을 벌이는 TV를 바라보면서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교회가 빌딩 짓기를 경쟁하는 모습이다. 성전 앞뜰에서의 양과 비둘기를 흥정하던 그 때의 장사꾼에 비해 별로 낫다고 보이지 않는다. 남아도는 성도들의 성금이 있다면 호화판 성전을 지을 것이 아니라 벽촌의 개척교회를 돕는다거나 주위의 극빈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독교계가 십시일반의 뜻을 더 많이 모았으면 한다. 그러면 하늘엔 영광이요, 땅엔 평화다. 이게 누구나 바라는 연말의 소망일 것이다.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십시일반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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