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비참과 무력의 경계.
영리병원, 비참과 무력의 경계.
  • 안산뉴스
  • 승인 2019.01.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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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일반 병실은 두 세 달 정도 대기해야 합니다. 1인실이나 VIP 병동이라도 괜찮으면 1인실은 하루 50여만 원, 간호통합병동은 비용이 조금 더 추가됩니다. 1인실도 없으면 VIP 병동에 입원해야 하는데 VIP 병동은 하루 80여만 원부터 200여만 원까지 여러 병실이 있어요. 어떤 곳에 배정될지는 입원 당일의 병실 상황에 따라 예약한 순서대로 결정됩니다.”

지난 달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위중한 질병 앞에서 치료는 시작도 못하고 검사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무턱대고 2~3개월을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검사는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가족의 병보다도 비용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참했습니다. 병이 아니라 비용 앞에 무기력하고 무참하다는 사실이 또 무력했습니다. 입원 당일 1인실을 배정받고는 다행히 VIP병동은 아니라며 웃지 못할 안도를 했습니다. 검사를 위한 6일간의 입원 중 하루, 수술을 위한 6일간의 입원 중 하루, 총 이틀간의 1인실 사용료만 100여만 원이었습니다.

영리 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지난 몇 주간 이슈였습니다. 영리 병원은 투자자의 자본을 통해 운영되고, 병원 운영을 통해 생기는 수익금은 투자금액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배당됩니다. 투자금액을 회수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병원이란 낯설면서도 익숙한 수식어가 병원 앞에 붙습니다. 관련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영리 병원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의료가 상품이 되고 자본이 의료를 독점할 때 의료의 계급화, 생명의 자본화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에 속하지 않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를 적용할 경우, 정부에서 비용과 진료행위를 통제할 권한이 없습니다. 의료를 서비스화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할 권리를 갖으면서도 정부 감독은 받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 의료의 질 저하와 고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과잉 진료의 가능성 뿐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한 노동 조건 악화가 반드시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동안 의료는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 교육 등과 함께 사회기반시설로 분류되어 공공성이 강조되는 분야였습니다. 이러한 영역에 공공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의 일상생활과 깊게 연관되어 편의와 복지, 공익을 제공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회기반시설들이 민영화되고 외주화되며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이 공익보다 앞설 때 발생하는 일들을 우리는 지금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KTX의 탈선사고, 구의역에서 고인이 된 김군, 태안화력의 김용균씨, 보육과 교육의 공공성 논의를 불러일으킨 사립유치원 문제... 민영화된 사회기반시설의 폐해는 이를 사용하는 구성원과 이곳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는 그의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통해 자본이 과학과 의료를 어떻게 섭외하여 생명에 앞서는 주체의 자리에 올려놓는지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인 제약회사가 약을 개발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약을 개발할지와 그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어떤 지식을 생산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그의 문법을 인용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원이 기업이 될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이윤은 어떤 진료를 확대하고 어떤 진료를 축소할지, 어떤 환자가 고객이 되고 어떤 환자가 병원의 문턱에서 발을 돌리게 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50여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1인실을 가진 병원은 영리병원은 아니지만 민간병원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 위중한 질병을 갖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병원이었습니다. 병실의 20%를 1인실과 VIP병동으로 운영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하루는 1인실, 운이 나쁘면 VIP병동에 머물다 다인실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 병원이 영리 병원으로 운영됐다면 비용 앞에서 더 큰 비참과 무력과 마주하게 되진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병 앞에서 하루 50만원, 200만원의 병실료를 말할 수 있는 자본과, 그 자본 앞에서 병을, 생명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을 비참과 무력. 영리병원이 그 가능성을 더 확대한다면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고민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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