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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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뉴스
  • 승인 2019.01.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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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철 협동조합 우리동네연구소 퍼즐 이사장

필자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청운의 꿈과 함께 서울에 왔다. 대학에서는 클래식 성악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작곡을 배웠다. 시대정신도 있고, 정의감도 있던 듯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 왔으니 나름은 출세한 셈이라고 스스로 위로 삼으며 성실하게 살았다. 도시의 고수들과 정신없는 일상을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고향이고 가끔 그리워진다. 평소에는 생각지 못하다가 아련하게 어릴 적 모습이 그리워지고 사람들이 떠오르면 한참 동안 멍하니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와 예술가들이 고향을 표현하나 보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흔한 자전거도 귀할 때라 웬만한 곳은 걸어 다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호사스러운 일이었지만 정겨웠던 친구들도 있고 마을도 있고 길도, 집들도 있었다. 지금 걸어보면 그리 멀지 않은 길이 그때는 그렇게 멀었다. 초등학교 때는 한 울타리 열두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저녁마다 애들 우는소리, 부부싸움 하는 소리, 깔깔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움이 일상이었고 열두 집 아이들이 마당에 금 그어 놓고 팔방 놀이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옆집에 음식 심부름 다니고, 이웃들이 주는 음식을 거의 매일 먹었던 기억도 난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다.

겨울이 되면 손 등이 불어 터져서 갈라지기 일쑤였고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단발머리, 남자아이들은 까까머리였다. 기계 독 올라서 머릿속이 훤하던 아이들도 흔했다. 단백질이 부족한 시절이라 평소에 너무 좋아하던 음식인 달걀 공장, 오뎅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 한참 동안 장래 희망이었다. 그런데 요즘 유난히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고 그립다. 가끔 고향에 가면 일부러 다녔던 학교 근처나 거리를 걸어보는데 가슴 뭉클하고, 설레고, 짠하기도 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감정이리라.

필자는 검정 교복 입은 끝자락 세대라 중학교 때 교복을 입었고 호크 채우고 모자 쓰고 학교에 갔다. 1년 후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지는 관계로 얻어 입은 반질반질한 찢어진 교복을 기워 입고 다녔는데 너무 창피해서 어머니께 따지다가 철없다고 혼쭐이 났었다. 고향에 대한 마음은 늘 그렇듯 고즈넉하다. 마을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이 5년 정도 되어 간다.

필자가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질수록 앞으로 살게 될 마을에 대한 욕심도 커진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는 아이들과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지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정겨운 마을을 만들어 낸 곳들을 떠올려본다. 주민 스스로 노력해서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시골 같은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시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들이 있고 많이 부럽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보태 지속적 활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학교도 만들고 협동하는 모델로 조합도 만들어낸다. 같이 모일 공간을 만들고 같이 식사할 밥상도 차린다.

자원 순환의 방법을 찾고 마을재생을 고민해 공방이나 목공소, 공구대여 등의 터를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필자의 동네도 지난 몇 년 동안 공동체를 만들고 주민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어떤 이는 뭐 하려고 그렇게 하는지 의심의 눈으로 보기도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금년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텐데 그 과정에 우리가 연구하는 따뜻한 마을에도 더 가까이 같으면 좋겠다. 마을에서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힘. 마을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 마을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협동하는 힘.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행복해지려는 힘. 이것은 마을을 같이 고민하는 열정적인 주민들이 있기에 꿀 수 있는 꿈이고 앞서 필자가 그리는 고향처럼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느낄 감정이기에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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