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시대
번아웃 시대
  • 안산뉴스
  • 승인 2019.01.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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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산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 동시대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 주로 향하는 표현이다. 청년들은 자주 아팠다. 근속년수를 오래 못 채우고 일터를 전전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그들을 두고 기성세대들은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 ‘노력을 안 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고, 나름 ‘요즘 애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 자의식 과잉의 나는 말없이 동의하곤 했다.

예전 시대와 비할 것 없이 요즘의 청년들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력이 없는 청년들이 결과적으로 노력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노력을 지속할 수 있을 만한 구조가 아니라는 것은 시민사회에 발을 담근 이후에야 알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고치자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결국 기성세대의 말에는 답변하지 못한 채 침묵을 고수한다는 점은 과정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같았다.

하지만 결과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대부분 이해할 것이다. 결과만을 놓고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단편적 평가에 불과하며, 결과에 따른 원인을 알아야 건설적 평가와 계획이 가능한 까닭이다. 그리고 결과는 원인을 알려주지 않기에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아픈 청년들, 포기한 청년들, 한 세대를 통과하는 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자꾸 소진되는가? 한 가지만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사회적 배경부터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큰 장벽이 있다. 2008년, 영국의 비평가 마크 피셔는 그의 저서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폐를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명명했다. 그는 번아웃 증상을 ‘자본주의적 우울증’이라 진단하며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드러내었다. 최근 미국의 언론사에서도 버즈피드에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번아웃 세대라고 표현하며 이에 대해 다뤘다.

이 기사에 언급된 심리학자 조시 코헨 역시 번아웃에 대해 저술한 바 있는데 그는 히포크라테스를 회귀하며 번아웃이 ‘염세적 우울증’이라고 불리던 점에 주목했다. 번아웃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당황하는, 르네상스 특유의 증세라는 것이다. 1800년대 후반,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현대 산업 생활의 속도와 긴장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에 따라 번아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상이 다르지만 현재 밀레니얼 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의 변화 속도는 어마무지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한 미국의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번아웃은 우리가 휴가를 통해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종사하는 근로자만이 경험하는 것도 아니며 일시적인 고통도 아니다. 이것은 천 년의 상태이다, 우리 세대의 기본 온도이며 우리의 삶이다.” 그는 우체국에 가서 무엇을 부치는 것 따위의, 소소한 잡무마비가 지속되는 것을 인지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실제 소진의 매개변수를 더 많이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이를 치료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등 치유를 위한 자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역시 달성해야만 하는 우리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경쟁 중심, 성과중심의 삶이 당연했던 밀레니얼 세대는 ‘항상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면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치료 역시 과업이 되고 심지어 SNS에 올리는 개인의 삶조차 ‘브랜딩·마케팅 해야 하는’ 과업이 되어버렸다.

번아웃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가 호소하는 고충이지만 현재 동시대에 발맞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변화에 당황하고 시대에 절망하는 누군가라면 고통 받고 있을 사회적 문제다. 마크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예전 같지 않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번아웃을 넘어선 부나방의 끝이 있으리라. 우리에게 과업이 있다면 이것 하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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