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전칠기
아! 나전칠기
  • 안산뉴스
  • 승인 2019.01.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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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수필가·한반도문학 회원)

요즘 한동안 잊혀져가던 나전칠기가 어느 힘 있는 국회의원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기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나전(螺鈿)이란 말은 반갑다. 우리나라 나전 전통은 멀리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간다.

고려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청자와 불화, 그리고 나전칠기를 들 수 있다. 고려는 개방된 국가였다. 해상관문인 예성강은 송나라, 일본을 비롯해 멀리 아라비아 등지에서도 교역선이 빈번하게 왕래해 세계의 진귀한 물품이 개성으로 집중되어 귀족문화를 꽃피웠다.

나전 공예품도 당시의 세련되고 치밀한 미감이 가감 없이 구현됐다. 나전은 얇게 간 조개껍질을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 내어서 목기의 겉면에 박아 넣거나 붙여서 장식하는 칠공예다. 세간에 전하는 유품은 몇 안 되지만 신비적인 광채를 발하는 조개의 세편(細片) 하나하나에서 고려인의 뛰어난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고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인 서긍(북송:1091~1153)은 휘종 황제의 사신으로 개성에 1개월간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기록했다.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보고서인 셈이다. 도경(圖經) 중의 도(圖) 부분은 정강(靖康)의 난리 때 망실되어 버렸고 경(經)은 고려의 건국을 시작으로 궁전, 인물, 종교, 풍속, 지리 등 고려의 실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나전에 관한 기록이 있다.

"기병이 탄 안장과 언치(말, 소 등에 덮는 방석이나 담요)는 매우 정교하며 나전으로 안장을 꾸몄다(車馬).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 만드는 일은 세밀한 것을 귀하다고 할 만하다(土産)." 

겨우 두 줄에 불과한 기사지만 ‘極精巧’ ‘細密可貴’라는 표현은 당시 고려 나전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말 장식에 나전으로 꾸몄다는 사실은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ㆍ시문문(詩文門)’에서도 보인다.

“독수리가 바다에 들어가서 변화해 대(玳)가 되는데, 말 장식을 할 수 있다. 이것을 가(珂)라 이르는데, 가란 것은 나(螺)의 등속이다. 지금 사람은 전복껍질의 부서진 조각을 가져다가, 칠(漆)로써 물품에 붙이는 것을 나전이라 이른다.”

나전공예는 당나라 때 융성해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때 만개했다. 동시대 송나라 나전 기술은 쇠퇴해져 거의 잊혀 가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서긍이 목도한 고려의 나전공예는 그의 눈을 휘둥그렇게 할 만 했다.

고려의 나전 기술은 귀족문화의 눈부신 고양기에 힘입어 활짝 꽃핀 것이다. 당시에는 불경을 담은 함과 작은 책상, 필통 같은 문방구에 자개를 입혔다. 조개껍데기로 국화와 모란 넝쿨을 정교하게 새긴 장인의 솜씨는 우리 민족의 손재주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전을 만드는데 자개를 손질하고 옻칠과 건조를 거쳐 마지막 광내는 작업까지 마흔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2012년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인간문화재가 만든 나전칠기 갤럭시탭을 선물로 받았다. 최신 태블릿PC 뒷면에 남해안 전복껍데기를 사용한 나전으로 가로 2.9cm 세로 2.1cm 모란꽃을 새기고 옷칠로 마감했다.

전통문화에 첨단 IT산업을 접목한 것이다. 옛 어머니들은 안방에 자개농을 들이는 게 ‘로망’이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값비싼 옻칠대신 헐값인 화학 도료로 조잡한 자개농을 만드는 사람이 늘면서 내리막을 탔다. 이제는 국빈 선물용으로 꼽힐 만큼 시대 역할이 바뀌었다(김기철).

요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선 ‘大고려’ 전시가 열리고 있다. 런던 영국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도 전시품이 왔다. 박물관 후원회가 몇 년 전 사들인 국내 유일의 손상 없는 나전 칠기도 나왔다고 한다.

필자는 1995년 ‘대고려국보전(호암갤러리)’ 전시 때 나전공예를 본 적이 있다. 24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본 나전의 형상은 너무 강렬해 내 기억의 저만치에 머물고 있다. 조만간 중앙박물관에서 그때의 흔적들을 꿰맞추고 싶다. 마치 추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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