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야 하는 것과 덮어야 하는 것
밝혀야 하는 것과 덮어야 하는 것
  • 안산뉴스
  • 승인 2019.02.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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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석 안산시독서동아리네트웍 회장

“어릴 때 나는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아이였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도시락도 변변히 싸갈 수 없는 집안 형편, 게다가 너무 잦은 이사에 기가 꺾여 어깨를 펴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교회 목사여서 자식들에게 공책 한 권 사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 학용품을 사주셨지만 용돈까지 줄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용돈이 궁했던 나는 고민 끝에 달걀을 매일 한두 개씩 훔쳤다. 달걀이 매일 한두 개씩 없어지는데 부모님이 몰랐겠는가. 그런데도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이놈아, 도둑놈아, 달걀 훔쳐 가지마!’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고도원의 ‘혼이 담긴 시선으로(꿈꾸는 책방 132~13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밝혀야 하는 것이 있고, 덮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이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며, 무엇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이 기도문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밝혀야 하는 것은 밝힐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덮어야 할 것은 덮을 사랑을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가난한 시골 목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훗날 좋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허물을 덮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만약 부모님이 어느 날 나를 불러서 ‘너 이놈의 자식, 달걀 훔쳐갔지? 이 도둑놈 자식!’ 이라고 비난했다면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나는 도둑이다’ 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고맙게도 부모님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으시고, 나 스스로 그 행동을 멈출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위의 글은 새해를 맞아 어느 지인이 보내준 글이다. 온 나라가 손혜원, 최교일, 손석희에 이어 대통령 가족의 이민 문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들이 쏟아내는 가십들로 소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도대체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뉴스들이 도대체 우리 서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연결 짓기도 난망하다.

무차별로 쏟아져 나오는 이런 소식들 중에는 엄밀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도 있겠지만, 반면 뉴스로서의 가치도 없는 것, 혹은 그것의 가치 이상으로 보도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뉴스들에 대한 적절한 필터링도 없이 진영 논리나 자사 이기주의 혹은 특종의 유혹에 따라 무작정 폭로만이 숭고한 사명인양 언론은 목소리를 높이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춤을 추는 꼴이 아닌지 싶다.

국민은 하루하루가 피곤하다. 언론의 헛된 공명심에 외쳐대는 소음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따라서 우리 언론을 위해 이런 기도를 하느님께 드리고 싶다.

“하나님, 우리 언론이 반드시 밝혀야 하는 것은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밝히되, 무시하고 덮어야 할 것은 특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덮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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