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숙 석기마녀 회장
차은숙 석기마녀 회장
  • 서정훈 기자
  • 승인 2019.02.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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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유적 교육이 뿌듯합니다”

안산시가 2016년 교육혁신지구로 지정됐다. 교육혁신지구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지역교육공동체 구축을 위해 안산시와 경기도교육청이 협역으로 지정한 지역으로 안산품은 학교와 다문화 어울림학교, 에코 문화예술학교, 꿈의학교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안산품은학교 사업은 학생들에게 안산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교육을 통해 내 고장에 대해 바로 알고, 토론형 시민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함양하며, 안산의 생태환경교육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 고장 바로 알기 프로그램은 안산학연구원이, 민주시민 교육은 안산YMCA가, 생태환경 교육은 안산YMCA 풀뿌리환경센터가 맡고 있다.

내 고장 바로알기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안산학연구원에서는 안산지역 역사 선생님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6개 분야 12종의 체험프로그램의 교사용 지도서와 활동지, 교구를 개발해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안산의 첫 마을을 달리다(신길역사 유적공원), 안산이 여는 대한민국의 미래 다문화를 느끼다(원곡동 다문화거리), 단원으로 읽는 삶과 멋(단원미술관), 성호 이익이 밝힌 세상(성호기념관), 새 세상을 여는 안산의 만세소리(수암동 3·1운동길), 배움의 소중함을 일깨운 상록수 최용신(최용신기념관)이다.

신길역사유적공원에서 ‘안산의 첫 마을을 달리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들은 주부들로 구성된 지역 교육 동아리 ‘석기마녀’ 회원들이다. 차은숙 석기마녀 회장이 이번 피플 파워의 주인공이다.

“아이들을 인솔하시는 선생님들이 버스에서 내리면서 첫 번째로 하는 생각이 ‘공원에서 뭐하지?’라는 겁니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역사유적공원에서 3시간 동안 뭘 배울 수 있을까 걱정하는 거죠. 그러나 수업을 받고 나면 매우 만족해합니다. 작년에 참가했던 선생님이 다시 신청하는 경우들이 있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아요.”

석기마녀는 동네 아줌마가 아니라 프로강사를 지향한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석기마녀 강사들 모두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역사 콘텐츠는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이 가능합니다. 처음 수업을 준비할 때는 모든 것이 다 석기로 보이더라고요. 수업준비가 덜 됐거나 수업이 재미없으면 강사의 눈동자가 흔들리죠. 그걸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아이들도 금방 알아채요. 스스로 전문 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석기마녀에서는 준비된 사람만 강사가 될 수 있다. 20시간 이상 보조강사를 도와야 보조강사가 될 수 있고 보조강사를 1년 이상 해야 주강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경력이 많고 다른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석기마녀의 불문율이다.

학생들은 역사유적공원을 모둠으로 돌아보고 활동지와 교구, 교자재를 통해 움집과 갈돌, 빗살무늬 토기, 옷 등 신석기인들의 의식주 활동을 체험한다. 또 신길동에서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과정을 통해 내 고장 안산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학생들은 ‘움집이 생각보다 크다’, ‘신석기인들은 원시인이 아니다’, ‘문이 동남향이고 도토리를 물에 담가 독기를 뺏다’며 수업에서 알게 된 내용과 느낀 점을 기록한다. 활동지는 부모들이 체험수업에 믿음을 갖도록 해준다. “선생님께서 문자를 주셨어요. 어머니께서 활동지를 보고 ‘놀러간 게 아니고 수업을 하고 왔다’며 좋아하더라고 전해주셨어요.” 학부모들은 체험학습이 버스를 타고 놀러 가는 것이라고 여겨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꼭 이름을 써서 학부모들에게 보여주도록 지도하고 있다. “활동지는 아이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체크해볼 수 있는 좋은 기록입니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다녀올 때는 리플릿 등을 꼭 챙기는 게 좋아요.”

버스에서 내리며 수업 내용을 우려했던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와 쏙쏙 들어오게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무(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역사유적공원)에서 유를 창조했다.”, “강사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두 번 오신 선생님께서 ‘첫 번째 수업은 재미있고 두 번째 수업은 더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석기마녀가 안산품은학교 수업을 진행하면서 기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석기마녀가 초기에 활동할 때만 해도 역사유적공원에는 표지판도 없고 설명할 것이 거의 없었다. 화장실은 물론 유물하나 전시해 놓은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안산시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안산시는 리모델링을 통해 신석기 시대 주거공간과 농경생활을 재연한 천막 2개 동과 학생들의 교육활동이 가능한 움집 1개 동, 화장실 등을 설치했다. 신길역사유적공원을 지붕 없는 박물관, 에코 뮤지엄을 만들어가는 석기마녀가 이뤄낸 성과다.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시민의 관심과 호응에 따라 관이 바뀌는 모습이 기뻤습니다. 이제는 역사유적공원에 무엇을 하든지, 할 때 마다 의견을 물어 와요. 예전에는 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했잖아요.”

석기마녀는 신길동에 아파트를 건축하면서 만들어졌다. 대한주택공사가 신길동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2005~2007년 신석기 시대(기원전 3500년) 집터 24곳과 유물 590점이 발굴됐다. 2010년 대한주택공사가 신석기 시대 집터 4곳에 짚 등을 이어붙인 움집과 조형물 등을 설치한 신길역사유적공원을 2013년 안산시에 인계했다. 그러나 유적지도 아니고 공원도 아니라는 평가 속에 청소년들이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장소로 주민들마저 기피하는 장소가 됐다.

이때 팔을 걷어부치고 ‘신길유적지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 신길동 삼익아파트에 있는 샛별도서관 윤명숙 관장(현 <사>더좋은공동체 이사장)이다. 신길역사유적공원을 재미나고 이야기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신길동에 거주하는 엄마들과 함께 ‘석기마녀’라는 이름으로 유적지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석기마녀’들은 출토된 590여 점의 유물 가운데 아이들이 관심을 둘 만한 유물(모형)을 체험학습 교구로 활용해 역사교육을 해오고 있다.

안산에서 태어나 결혼 후 삼익아파트에서 살던 차은숙 회장은 서울에 있는 직장을 출퇴근하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웃들과 담을 쌓고 살았다. 퇴직 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이대로 동네 아줌마에 그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 붙은 석기마녀 모집 공고를 보고 석기마녀 활동에 참여했다. 석기마녀에서의 강사 경험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현재는 찾아가는 직업체험센터 ‘채널배움연구소’ 총괄이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직업체험과 관련한 강의를 주로 하고 있다. “석기마녀 초창기 시절 첫 수업 때 어찌나 떨었던지요. 다 아는 동네 아이들을 모집해 수업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유남례 전 회장은 종이접기 분야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강사였다. 좋은 동아리 만들기 시흥시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잘 나갔던 유 전 회장은 석기마녀 2기에 지원해 종이공예가 아닌 역사교육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 때부터 알게 된 차은숙 회장과는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친구가 됐다. 건강의 문제가 있어 석기마녀 활동을 쉬었지만 건강을 회복해 올해부터 다시 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석기마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만두었다가 복귀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겁니다.”

두 사람 모두 석기마녀 활동 중 매년 11월에 여는 ‘신길신석기축제’를 가장 가치있는 활동으로 꼽는다. 신석기를 주제로 한 석기시대 토기체험, 활 만들기, 갈돌 갈판체험, 석기시대 복장체험, 석기시대 악세사리 만들기, 신석기 캐릭터 가방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과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가족 윷놀이와 제기차기 대회가 펼쳐진다. 먹자판과 장사판 축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즐거움을 주는 축제로, 건전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어떤 아이는 첫 축제 때 만들었던 활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요. 그 아이에게 축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

석기마녀 활동을 통해 덤으로 얻는 행복도 있다. 석기마녀 강사를 하면서 두 사람 모두 시댁에서 인정받고 있다. “시어머니께서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 ‘마냥 가정주부인 줄 알았는데...’ 하시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다르게 봐 주셔서 참 좋아요.”, “어머니 친구분이 축제 때 오셨다가 ‘네 며느리가 이상한 복장에 마이크를 잡고 뭘 하더라’고 전화를 하셨나봐요. 시어머니께서 꽤 자랑스러워 하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남편과 자녀들도 석기마녀 활동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 수업준비와 수업에 매진하는 석기마녀를 좋은 콘텐츠라며, 신길동이 좋은 동네라며 응원해줍니다”, “아이들이 수업 때만큼은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대하죠. 엄마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석기마녀는 활동 폭을 동네에서 밖으로 넓혀 나가고 있는 중이다. 원일중학교나 원곡중학교 등 중학교 자유학년제 수업에서 역사수업을 진행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수업을 맡긴 학교에서 재구독하기도 한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석기마녀 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다보니 석기마녀 멤버들도 동네에서 뿐만 아니라 안산 전역에서 지원해오고 있다.

내 고장 바로 알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초·중생들은 “다시 오고 싶다”, “실제로 공원에 와보니 책과 다르다”, “안산에 이런 곳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며 공부는 아닌데 교실에서 하는 수업과는 달리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는 반응을 보인다. 버려진 곳을 재창조해 신길역사유적공원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석기마녀의 자발적이고 건강한 활동이 마을과 안산을 바꿔 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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