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화목한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9.02.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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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 아카데미 클래스’ 두 번째 무료특강 마련
유현준 홍익대 교수 ‘어디서 살 것인가’ 주제로
최창규 대표 “인문학 교실로 지역사회 공헌”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입니다. 요즘 트랜드는 오직 건강뿐입니다. 건강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공간 구조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줍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대동서적(대표 최창규)이 16일 마련한 특강에서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한 얘기다.

대동서적은 지난 10일 도시설계 전문가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를 초청해 ‘되살린다는 것, 내 몸에서 국토까지’를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이어 유현준 교수를 초빙해 ‘어디서 살 것인가’를 주제로 시민을 위한 두 번째 ‘대동 아카데미 클래스’ 무료 특강을 가졌다.

유 교수는 이날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온돌 시스템’ 때문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늦어졌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온돌의 경우 2층짜리 주택 건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주택 건축에서 온돌과 아궁이가 분리되면서 2층짜리 양옥과 아파트 주상복합 형태의 건축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도시고밀화로 인해 아파트 위주의 부동산 붐이 일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유 교수다.

우리 사회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개인이 누리는 공간은 매우 줄어들고 있다. 서울의 대부분 공원은 평균 4km 이상을 걸어야 접근이 가능하다. 공간 구조가 잘못됐다. 공원이나 도서관은 대규모보다는 소규모로 많은 숫자가 있어야 한다.

도시는 공원처럼 개인이 집을 나와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은 그 분포가 열악하다. 그래서 그 역할을 카페나 PC방, 노래방 등이 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핫 플레이스가 대형 실내쇼핑몰이었다. 요즘은 야외 거리로 바뀌었다. 실내공간으로만 설계돼 있는 아파트 주거형태는 자연과 격리된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TV를 많이 보는 이유도 아파트 주거 공간 때문이다.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거실을 보라. 변하는 벽면은 TV가 있는 곳뿐이다.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을 원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만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환경의 아파트나 각종 공간 속에서 SNS와 게임을 하고 정작 할 것이 없으면 TV라도 틀어놓는다. SNS는 소수의 의견을 증폭시킬 뿐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소통의 부재, 단절, 혐오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면할 수 있고 머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길거리의 벤치, 공원 등이다.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하는가. 대부분의 녹지공간이 경사졌기 때문이다. 경사진 곳에서는 인간이 쉬지 못한다. 녹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평평한 녹지가 부족하다.

한강시민공원이 사랑받는 이유도 평평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 안전하다.

도시설계는 복합적이다. 어떤 거리는 왜 더 걷고 싶은가. 걷고 싶은 거리는 이벤트밀도가 높다.

홍대 입구나 명동거리 등이 이벤트밀도가 높은 거리다. 이벤트밀도가 높은 거리는 먼저 가게가 많아 선택권이 많아진다.

그 다음은 다채로운 변화가 있다. 다양한 상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공간 구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공동의 추억거리가 없다. 그 때문에 갈등이 심해진다.

도시 공간 구조는 단위면적당 벤치의 숫자가 결정한다. 지하철역과 공원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건축 공간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야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아파트 건축 구조는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키고 자연스러운 소통이나 융합이 줄어들어 경직된 사회를 만든다. 아파트처럼 획일화된 공간은 가치판단의 기준도 정형화시킨다.

아파트 평수를 따지고 가격이 얼마인지, 고급자동차와 최신 핸드폰 소유 등등 기준에 미달하면 누구나 루저가 된다.

도시의 획일화는 다양성을 인정하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학교 건축물’부터 바뀌어야 한다.

학교 건물이 교도소 건물과 너무나 똑같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변화하는 자연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교는 너무 획일화된 교실과 권력이 장악한 운동장뿐이다.

학교 공간이 울타리를 만들어 12년 동안 수감한 상태와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은 양계장 닭과 같다. 학교 급식도 전체주의 강화 결과다. 교도소의 집단급식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획일화를 주장하는 평등한 사회는 가치판단 기준을 정량화한다. 그러면 자존감이 없어진다. 우리 사회의 정량화 추세는 큰 문제다. 적절한 갈등은 사회를 발전시키지만 도를 넘어섰다.

행복하려면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줄어들어 빈 교실이 생기면 테라스를 만들고 옥상도 개방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

좋은 운동장 공간을 왜 못 쓰나. 누군가 항상 감시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사고가 안 난다. 그런데 학교 주변은 상가가 없다. 결국 머무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학생 유괴가 일어나는 이유다.

학교 건물 크기도 현재보다 많이 작아져야 하고 높이도 낮아져야 한다. 건물 크기와 높이가 낮아져야 보다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학교 건물이 낮아져야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여유롭게 내려와 햇빛도 쬐고 산책도 할 수 있다.

학교는 건물 크기가 큰 것보다 주택 정도의 건물을 독립된 여러 개로 나눠져야 각각의 작은 마당을 가진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인테리어가 건축인 줄 착각한다. 공간 구조를 봐야 한다.

학교 건물 건축비도 현재의 2배로 올려야 한다. 그래야 12년 동안 가장 좋은 환경에서 인격이 형성된다.

학교 운동장은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활용하거나 공원 등으로 쓸 수도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식은 책에서 배우지만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보다 훌륭한 교사는 없다. 우리는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 선생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훌륭한 건축가는 적당히 비워서 사용자가 채워가도록 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쓸데없는 공간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인간관계는 각종 세제 등의 정책들인 소프트웨어와 공간 구조의 하드웨어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간의 관계도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봐야 한다.

유 교수는 현대 사회는 건강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제는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편, 대동 아카데미 클래스를 주최한 최창규 대동서적 대표는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금년부터 우리 동네 인문학 교실을 시작했다. 두 번째다. 물론 무료 강연이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의외로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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