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가능성으로서의 종교
환대 가능성으로서의 종교
  • 안산뉴스
  • 승인 2019.02.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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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 교수

이스라엘의 종교가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됐을까? 뒤늦게 성경책을 읽으며 갖게 된 질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아시아를 잇는 지중해에 인접한 서아시아 지역으로,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고대사회의 문명과 문물이 교환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했던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는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왼쪽에 위치했던 그리스, 로마는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아프리카에 속했던 이집트는 아시아대륙으로 진출하며 이스라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리적 공간이었습니다.

앗시리아와 바빌론은 속국에 대한 통치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의 저항세력들을 본국으로 강제 이주하여 눈앞에서 감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이후 그리스, 로마 정복에서도 반복되는데 이러한 정복국들의 정책으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땅을 떠나 타국의 땅에서 이방인의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의 정복국이었던 앗시리아나 바빌론과 달리,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정치를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무력 충돌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들이 원하는 신에게 예배할 권리를 보장하는 균형으로 보았습니다. 고레스는 바빌론과 앗시리아에 강제 이주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했고, 본국의 파괴된 성전과 그들의 터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또한 지원했습니다. 성경은 이런 고레스에 대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방민족, 이방신을 모시는 왕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신을 인정하고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폐허가 된 성전을 복구하도록 도운 이방의 왕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런 고레스의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소수종파란 이유로 한 여성의 여섯 살 아들이 택시기사에게 살해됐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최근 본 영화 가버나움도 생각나네요. 종교적 갈등을 피해 레바논으로 피난한 시리아 불법 이주 난민 수용소에 백인 기독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묘하게 비애로운 장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 3천년의 시간을 거치며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됐고, 기독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는 배타성을 통해 내부의 유대를 공고히 다져왔습니다. 기독교가 탄생한 바로 그 지역에서 종교적 탄압이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자행되고, 예수가 탄생한 이스라엘의 이웃국가, 세계종교로 태동하는 기독교의 성지가 된 대륙에서 종교는 오히려 황폐함이 됐습니다.

종교와 종파의 자리를 인종과 민족, 사회·정치·경제적 계층으로 대체하면 서로를 분리하고 배제하는 현상은 종교를 넘어 일상 대부분의 영역에서도 관찰됩니다. 난민과 난민 아닌 자들, 노동자와 자본가, 억울하게 죽은자와 아직은 억울하게 죽지 않은 자, 비정규직과 정규직,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야당과 여당. 배제와 배제로 비롯되는 억압의 역사는 종교를 넘어 여러 현상으로 변주되며 여전히 진행 중인 셈입니다.

분리와 배제와 억압, 그리고 이 모든 걸 유발하는 편견과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이 산적한 오늘, 그러면서도 한편 뾰족한 십자가 첨탑으로 가득한 우리의 오늘에서 이스라엘의 종교가 세계 종교가 된 힘은 무엇이었을까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치란 서로의 신에게 예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본 고레스의 철학도 떠오르고, 고아와 과부로 은유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도 떠오릅니다. 종교의 배타성은 종교를 확장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지만, 세계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독교의 본질은 일상의 삶에서 서로의 자리와 공간을 보장하는 환대의 문법에 있는 건 아닐까, 그래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도시와 시골, 부촌과 빈촌, 행정지구와 법무지구, 우리의 공간 여기저기 세워진 십자가 첨탑 아래에서는 권력, 부, 힘, 다수로 상징되는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종교의 본질을 기억하는 약자를 위한 언어가 노래되어야 하는 것. 그것이 세계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힘이겠구나, 이제 막 진지하게 종교를 고민하는 초심자로 감히 추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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