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교육하는 자긍심으로 삽니다”
“다문화 교육하는 자긍심으로 삽니다”
  • 안산뉴스
  • 승인 2019.02.2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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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희 ( 직원협동조합 문화세상 고리) 이사장

안산시 원곡동에 사는 한국인은 ‘안산의 외국인’이라 불릴 정도로 외국인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동이다. 원곡동의 주민등록인구는 지난 1월 기준으로 7천74명이지만 등록된 외국인 인구는 2만248명이나 돼 10명 중 7명 이상이 외국인이다. 정부는 2009년 원곡동 36만7천541㎡에 대해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한 후 2014년에 이어 지난 2월초 2023년까지 5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다문화마을특구인 원곡동은 ‘한국 속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한국의 다문화 수도’인 셈이다.

원곡동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지만 학원은 없다. 단기간 체류하는 독신 외국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산에 등록된 외국인 중 가족을 동반한 외국인은 불과 2천665명, 결혼 이민자는 4천여명, 전문직 취업자 수는 500여명에 불과하다.

안산 전체 외국인과 원곡동의 외국인 비율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고급인력이 거의 없고 대부분 중국과 동남아시아 출신이다.

이러한 직업분포와 출신국가가 원곡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특히 범죄가 많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실제 범죄는 비율상으로 한국인보다 낮지만 외국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외국인 범죄가 언론에 부각된 측면이 크다. 이러한 원곡동과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져 안산시민들마저 원곡동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적 도시학자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관용의 문화가 곧 다문화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국가 발전의 모티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의 단점보다 장점을 살려서 안산 발전의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 ‘문화세상 고리’는 원곡동 다문화마을특구에서 안산품은학교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안산이 여는 대한민국의 미래, 다문화를 느끼다’는 주제로 다양한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살펴보고, 외국인 이주민들이 안산 발전과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임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갖고, 원곡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다문화특구를 다녀간 초중학생은 35차례에 걸쳐 1천여 명에 이른다.

안산품은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은 “원곡동에 이렇게 많은 나라의 가게가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됐다.”, “원곡동에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안산에 100개 넘는 나라의 사람이 산다.”, “내가 몰랐던 다른 나라를 알게 되었다.”, “다른 나라 문화와 음식을 알게 되어 좋았다.”며 원곡동과 외국인에 대해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내용을 올바로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은 “외국인도 문화가 있고, 얼굴도 색도 다르지만 마음은 우리와 비슷하다.”, “원곡동은 정말 멋진 곳이고 특이한 곳이다.”, “외국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알게 됐다.”, “외국인에 대해서 오해를 풀 수 있었고, 외국인을 차별하지 말아야겠다”며 외국인과 원곡동에 대한 그동안의 부정적인 생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120분 동안 진행하는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강사들은 바로 ‘문화세상 고리’ 직원들이다. 문화세상 고리는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 활동했던 다문화 강사 10명이 2014년 직원협동조합으로 설립해 현재 12명이 일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백승희 이사장은 “2010년부터 해오던 외국인주민센터 다문화 강사 활동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벽에 부딪혀 계속할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공공기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만의 일자리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10명이 주도적으로 다문화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다문화 교육을 사업영역으로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설립 교육을 함께 받고, 공동자금을 모았어요.”라고 설립을 준비하던 당시를 회고한다.

문화세상 고리는 한국의 문화와 세계 문화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활동 초창기부터 외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문화 교육은 물론, 이주여성 스스로 자국 문화를 가르치며 자존감을 높여갈 수 있는 다문화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여성들이 문화세상 고리에서 삶의 주체로서 협동조합의 직원,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출신 국가도 한국과 일본,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다양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결혼이주 여성들이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지역공동체일자리 전문가과정 중 하나인 초·중·고등학교 다문화 강사로 활동했던 백승희 이사장은 “10명이 똑같이 출자금 100만원씩과 협동조합 설립 준비를 위해 공동으로 모아 온 600만원으로 설립을 했다”며 “설립을 준비하던 당시 30여 곳 중 2~3곳만 현재 활동한다. 그 중 하나가 우리(문화세상 고리)다”며 미소를 짓는다.

문화세상 고리는 초·중·고 다문화이해 교육 1천회, 안산품은학교 60여회, 지역 축제와 학교축제 참여 20여회, 교사연수와 안산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원곡동 나들이’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설립 첫 해에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공모 1위를 비롯해 안산시장상과 경기도지사 표창 2회, 경기도 우수 사회적 경제 활성화상 수상 등 다수의 표창 수상과 고용노동부 사회적 기업 인증 등 빼어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식으로만 학습하던 다문화를 놀이화시킨 다문화 보드 게임을 전국 최초로 출시하는 등 다문화 교육에 관한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사다.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고 있어 백승희 이사장의 고민이 크다. 직원 모두 주부들이다 보니 근무시간도 주부들의 활동시간에 맞는 6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직원 급여는 110여만 원 안팎이다. “이사장인 저도 급여는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급여뿐만 아니라 모든 근로조건이 똑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윤이 있어도 배당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기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세상 고리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다.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대기업 직원들 못지않다. 직원들 모두 자국어 실력과 한국어 실력을 갖춰 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스스로 만든 일터라는 자부심과 자녀 교육열이 높아 6시간 기본근무라는 좋은 근무환경 등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은 없다.

“남편들에게 감사하죠. 돈 벌어오라는 말 안하고 아이교육을 중요시하고 부인의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들이기에 직원들이 문화세상 고리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 와서 공장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회사에서 일을 해 본 경험들이 있다 보니 직원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해주는 회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백승희 이사장은 직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한 일자리를 주자는 게 우리 회사 모토입니다. 그래서 한해 수업을 준비하는 1월부터 3월까지는 전체 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죠. 수업진행으로 다들 각자 식사를 해야 하지만 이때는 식사를 함께하며 공감대를 쌓곤 합니다. 다른 곳에 가서 ‘우리 회사 좋다’는 말을 하는 직원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개인적인 비전을 물으니 “10년 버티자”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외국인 결혼이주 여성과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이 이익보다 우선이라는 백승희 이사장은 “직원들 모두 선생님이라 불릴 때 드는 자긍심과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한국사회의 일원이라는 자존감이 높습니다. 이 분들이 10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액자의 글귀가 시선을 멈추게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도종환 시인의 시 제목이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고, 힘들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버텨내는 인내와 끈기가 꽃을 피운다.

“10년 버티자”가 비전이라는 백승희 이사장의 말과 맞닿아 있는 싯귀이다. 원곡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외국인을 편견과 차별이 아니라 안산발전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문화세상 고리가 10년 이상 버티어 활짝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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