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디스토피아
성차별 디스토피아
  • 안산뉴스
  • 승인 2019.03.0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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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안산청년활동가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1908년 2월 28일, 미국 러트거스 광장에 울려 퍼진 약 1만 5천명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억압받는 삶을 살던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생존권 ‘빵’과 참정권 ‘장미’를 요구하며 싸웠다.

그 후에도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세계여성의 해’였던 1975년, UN은 매년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3.8 세계여성의 날 집회는 올해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된다.

그 말은 즉 아직도 여성인권이 평등하게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없는 일처럼 치부되다 마침내 터져 나오고 있는 미투, OECD가 성별임금격차 통계를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동의 1위를 차지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채용성차별과 웹하드 카르텔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 나열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여성으로 살아감에 있어 겪게 되는 부조리에 대항하는 투쟁의 목소리가 광화문에서 들려올 것이다.

성차별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그리고 간성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100여 년 전의 의제인 여성의 생존권은 2019년인 지금 잘 보장되고 있는가? 아니다.

숱한 여성들이 강간, 살해, 폭력, 협박 등의 위협에 직면하고 성차별적 채용으로 구직조차 어려워 연명해나갈 돈을 벌기도 힘들며,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에 독박을 쓰고 있는 현실이다.

남성에게도 맨박스 안의 남성성 강요,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짊어지게 되는 사회적 특권에 따른 책임들이 무겁다.

그러나 그걸 역차별이라고 우기지는 말라. 역차별은 차별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반작용이니, ‘역차별’을 없애고 싶거든 차별의 근원, 가부장제에 따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그 누구도 편하게 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별이분법적 굴레 속에서 간성은 존재와 생존 자체부터 지워진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성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세계여성의 날 뿐만 아니라 다른 날 다른 곳에서도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저서에 따르면 성차별은 인류가 처음으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지긋지긋하도록 오래된 차별인 만큼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백년이 흐른 후에도 3월 8일이 되면 광화문에서 구호가 울려 퍼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공식적인 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 숨죽여왔던 통탄과 분노가 밖까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들이 언론에 보도가 되며 함께 지지하며 싸워줄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대투쟁은 이미 일어났으며, 이를 이어줄 사람들이 있는 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변화의 물결에 몸을 담은 우리들은 사회에 ‘빨간약’을 먹이려 한다. 그 행위는 어떤 이들에게 정겹고 공감되며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고 거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면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감수되는 법. 당신이 정녕 평등을 원한다면 기꺼이 본인의 몫으로 삼아야 한다. 당신이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이미 세상은 평등을 향해 가고 있으니 그대로 도태되던지, 뒤늦게라도 발맞춰 올 것인지를 선택하면 된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즐겁게 지켜봐 달라. 그렇지만 평생 입 뻥긋하지 않고 살 것인지,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에서 고민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혹시 이 기사가 불편한 당신은 빨간약 처방이 시급히 필요하니 가까운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찾으라.

또, 투쟁이 너무 지쳐 숨이 막히는 당신은 당신이 쉬는 동안 대신 싸워줄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길 바란다. 이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 그곳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의 수만큼 수평을 맞출 때 각자의 위치에 따라 각자의 흔들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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