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여자, 왜 이리 예쁘니
수필-이 여자, 왜 이리 예쁘니
  • 안산뉴스
  • 승인 2019.03.0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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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선 (한반도문학회 회원)

“입가에 미소를 담고/어스름 사이를 가르며/ 바람에 문을 여는 이 여자/ 왜 이리 예쁘니” 눈곱이 눈썹달에 걸려 달그랑거리는 아침을 빼꼼히 여는 이 여자.

부스스한 잠옷 차림 그대로 주방으로 향하는 이 여자.저녁 설거지는 퉁퉁 불려놔야 세척이 편하다는 생각이었겠지. 싱크대 안에서 묵은 때를 밤새 불리던 그릇들의 달그락거림이 애완견이 흔드는 꼬리보다 요란스럽게 주인을 반긴다.

세제를 듬뿍 묻힌 수세미로 콧노래를 부르며 세안을 하듯 애무를 한다. 탈탈 털리는 음씩 찌꺼기가 지난밤 밀회가 아쉬운 듯 눈물을 흠뻑 쏟으며 하수구로 빨려들었다.이 여자의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간다.

뒤를 돌아보는 여자는 무엇이 좋은지 빙그레 웃음을 보인다. “이리 나와 봐. 나도 이놈들하고 친한 척 좀 하게.” 고무장갑을 주섬주섬 끼고 슬쩍 여자의 어깨를 밀쳐 냈다. 얄궂은 여자의 표정에는 “진작 알아서 하지 꼭 뒷북을 친다니까?” 못 이기는 척 물러서는 이 여자의 손이 남자의 엉덩이를 툭! 치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입으로 내미는 혓바닥의 길이만큼 여자의 웃음이 거실로 뒹군다.신혼 초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여자가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동갑내기에다 생일 달이 구월인 친구 셋의 모임이라 ‘구월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단다.

제주도 콘도를 예약해주고는 딱 한 마디를 당부했다. 내 이름으로 예약을 했으니 관계를 증명할 주민등록등본을 가지고 가라고. 말 안 듣는 아이는 꿀밤이라도 주련만 이 여자가 행동할 예상은 늘 빗나가지 않는다.제주도에 도착해 신분을 확인할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하자 난감해진 여자는 가방을 탈탈 털었다.

지갑 속에 꼭꼭 숨겨두다 미운털이 박히는 날에 눈을 흘기던 남자의 증명사진을 찾아냈다. “여기 있어요. 이 사람이 여기 예약한 사람이에요.” 난감해진 직원이 “사진 말고요. 의료보험카드 뭐 이런 거 없으세요.” 동행한 ‘구월이’ 중 한 명이 “아! 맞아요. 이 사람이 얘 신랑 맞는데. 증명할 수 있네.” 결국에는 묻기를 포기한 직원이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증명서를 팩스로 받고서야 숙소로 들어갔다.

열쇠를 꽂아야 불이 켜진다는 걸 모르던 ‘구월이’들은, 캄캄한 방 안에서 스위치를 붙들고 애원을 하지만 불이 들어올 기미는 없다. 출입구에 붙어있는 자동 인식 전등으로 다가서서 깡충깡충 뛰면 켜지는 불에 환호성을 질렀다는 뒷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웃음바다로 변한다.‘마파도’라는 영화가 개봉되자 여자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인기가 있었는지 매표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여자와 남자는 임무를 분담했다. 여자가 영화표를 구매하는 동안 남자는 음료와 팝콘을 샀다. 갑자기 매표소 앞에 배꼽들이 뒹굴며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사람들이 나뒹굴기 시작했다.

“어이쿠! 또 무슨 사달이 났네.” 후다닥 매표소로 뛰어갔다. “무파마, 네 장 달라고요.” “네?”를 외치는 직원과 여자의 실랑이에 줄은 선 사람들의 배꼽에 잔치를 벌였다. ‘무파마’는 내가 마트에서 사 올 테니 ‘마파도’ 주세요? 남자의 말에 줄을 선 관객들은 초토화가 되었으나, “아들 둘을 낳아 봐봐.

새겨서 들으면 되지?”라는 여자의 넋두리는 극장을 무너져 내리게 했다.퇴근 전에 전화기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저녁 먹으러 집에 올 거지? 집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밥하기.”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소리는 먼저 가서 밥을 하라는 명령이다. 쌀을 씻어 밥솥에 버튼을 누른다. 슬그머니 뒤로 돌아온 여자가 엉덩이를 툭툭 친다. “치릇치릇, 치릇치릇” 압력밥솥에서 김이 빠지며 모락모락 구수한 사랑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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