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마주한 두 가지 화두
‘사람과 환경을 위한 돌봄’

최라영 안산대학교 교수

2025-08-13     안산뉴스

서울에서 전남 영암까지 가는 길은 좋아졌어도 여전히 멀다. 이번에도 95세로 홀로 사는 할머니를 뵙기 위해 긴 여정을 나섰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뵙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일상의 바쁨과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가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양보호사의 정기 방문이다. 하루 잠깐이라도 누군가를 만나 웃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몸과 마음 모두에 활력을 준다. 할머니를 보며 그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이것은 우리 가족만의 사연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 부르는데,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지 7년 만인 2024년 이 기준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5%, 2050년에는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의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며,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가족 구조, 돌봄 체계, 지역사회의 운영 방식까지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여름의 짙은 녹음이 이어지고 벼 이삭이 바람에 일렁였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은 깊은 초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풍경은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이유는 기후변화다.

기상청과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꾸준히 상승했다. 여름은 과거보다 약 20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가량 짧아졌다. 2021년 연평균기온은 1981~2010년 평균보다 약 1.5℃ 높았다. 열대야의 빈도와 강도가 매년 커지고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미래 세대에게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나는 결국 두 가지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하나는 고령사회 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돌봄’, 다른 하나는 기후 위기 시대의 ‘환경에 대한 돌봄’이다. 두 방향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람과 환경은 맞물려 있고,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멀리 있는 가족이라도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을 덜 수 있다. 지역사회는 서로 얼굴을 알고,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망’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묻는 작은 습관이야말로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안전망이 된다.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환경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리듬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을의 나무를 가꾸고 하천을 정화하는 작은 활동도 충분히 의미 있다.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어도 일상 속 습관 하나하나가 모여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영암에 도착해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주름진 손등에는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었지만, 그 온기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과 환경 모두에 대한 진정한 돌봄은 거창한 계획에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 작은 실천이 먼 미래의 나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지켜줄 가장 확실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부터 두 가지 돌봄을 동시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