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처럼

이혜란 시인

2026-03-11     안산뉴스

봄의 문턱, 3월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숨을 고른다. 바람은 차갑고 코끝을 스치는 겨울의 잔기운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따스함을 느낀다. 겨울 동안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개구리가 놀라 깨어난다는, 그 미묘한 변화의 절기 경칩이다.

경칩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대개 3월 5일 무렵 찾아온다. 천둥이 치면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는 옛 선인들의 상상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얼어붙은 땅이 서서히 풀리고 씨앗은 흙을 밀어 올린다. 보이지 않던 힘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3월이다.

3월은 분주하다. 학교마다 입학식을 한다. 입학식은 한 사람이 걸어온 이전의 시간을 정리하고 다른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이다. 새로운 단체 생활에 소속되고 그에 걸맞은 책임도 따른다. 새로운 또래 친구를 만난다. 긴장과 설렘도 있고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입학식은 사람의 관계에도 있다. 박수와 환영 속에서 맞이하는 출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생명이 같은 속도로 깨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씨앗은 더 깊이 잠들어 있고 어떤 꽃은 더 늦게 피기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 하나. 미뤄두었던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는 흔히 굳건함을 덕이라 생각하고 부러지지 않으려 자신을 팽팽하게 조이지만, 깊은 숲속 나무들은 안다. 태풍을 견디는 것은 단단한 껍질보다 유연하게 휘어지는 마음이라는 것을, 상처를 품고도 무너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봄이 온다는 것을, 그런 인내의 끝자락에 봄기운이 깃든 따스한 경칩이 있는 것이다.

아직은 완연한 봄이 아니어도 괜찮다. 씨앗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치열하게 지켜낸 것들이 있다. 추위에 몸을 낮추고, 뿌리를 지키고, 수분을 아끼고, 스스로 얼지 않게 한 계절을 통째로 견뎌냈다. 사람도 그렇다. 넘어지고 수없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섰다. 긴 기다림으로, 침묵으로, 외로움으로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봄을 맞는다. 긴 겨울을 통과한 사람의 심장 같은 경칩, 얼음장 같은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들어 올리는 흙, 그 위에 찬란한 꽃을 피운다.

혹한을 버텨온 사람은 두려움 앞에 주눅들지 않는다.

넘어짐도 배움이 되고 실수도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느리지만 분명하게, 맨발로 우리 곁으로 뛰어 오는 봄을 향해 긴 기지개를 켜보자.

다시,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