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두 얼굴
이혜란 시인
총보다 무서운 것은 거짓이다. 총은 한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가짜뉴스는 한 사회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거짓말에도 두 얼굴이 있다. 어떤 거짓은 사람을 웃게 하지만, 어떤 거짓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기도 한다.
4월이 시작되자 마자 통용되는 장난스런 거짓말이 있다. 4월 1일 만우절이다.
이날 만큼은 작은 거짓말이 웃음이 된다. 과거 금세 밝혀지는 사소한 장난은 긴장을 풀어주는 사회적 놀이 같았다. 분명 거짓말이지만 모두가 거짓임을 알고 웃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농담같은 것이었다. 때론 화재신고 같은 수위를 넘는 거짓말이 헤프닝으로 끝나 만우절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거짓말은 더 이상 웃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가짜뉴스’는 만우절 장난과는 다른 차원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다수의 익명을 대상으로 분노와 두려움을 자극할뿐 아니라 여론을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거짓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거짓의 규모와 파급력은 다르다. 과거에는 골목의 소문이었다면 지금 디지털 시대는 정보를 순식간에 퍼뜨린다. 스마트폰 하나면 뉴스가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사실처럼 확산된다. 또 SNS를 통해 정보는 순식간에 퍼진다. 한 번 만들어진 거짓 정보는 수천, 수만 명이 동시에 공유하며 사실처럼 굳어진다. 진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바꿔 놓는다. 진실을 밝혀 내는 시간이 거짓이 번지는 시간을 따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걸어서 오는 진실이 클릭 한 번으로 번지는 거짓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점들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회적 위험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속도가 진실보다 훨씬 빠르다는데 있다. 자극적인 거짓일수록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분노와 불안을 부추기며 더 널리 빠르게 퍼진다. 클릭수와 조회수가 진실보다 앞서는 순간,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하나가 순식간에 여론이 되고 사람과 사회을 불신으로 갈라 놓는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은 진실처럼 믿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정보에 더 쉽게 끌리는 경향이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가짜뉴스 일수록 더 빠르게 확산된다. 자극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만우절을 다시 떠올려 보자. 만우절의 거짓말은 유통기간이 하루다. 잠깐의 웃음을 준 뒤 곧바로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다르다. 어렵게 거짓이 밝혀진 뒤에도 이미 생긴 불신과 분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심각한 균열로 큰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의 장난스런 거짓이 공동체를 흔드는 독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웃음으로 끝나는 거짓과 사회를 흔드는 거짓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 거짓을 더 빨리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일지 모른다. 다양한 정보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그것이 정보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와 책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