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거리는 몇 센티가 좋을까?
이혜란 시인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을 통해 치유 받는다.
외로운 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람이고, 가장 간절한 용서도 사람이 전하는 위로와 사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너무 가까우면 상처가 되고 너무 멀어지면 그리움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거리는 몇 센티가 적당할까.
사람마다 느끼는 편안함의 거리는 다르다. 따뜻한 관심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한 배려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상대의 거리를 인정하지 못할 때 생긴다. 지나친 관심은 간섭이 되고 무관심은 외면이 된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당한 거리의 균형이 필요하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자로 재어 볼 수도 없고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또 멀어지면 마음이 식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생 누군가와 거리를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 때로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쉽게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는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적절한 거리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현대 사회는 어느 때보다 쉽게 연결된다. 일면식 없는 관계도 손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다수의 사람과 소통하고, 안부를 묻고, 사진을 공유하고,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외로움의 깊이는 더 해졌다. 스마트폰 안에 수백 명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는 의문 앞에 선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인간관계의 딜레마 이야기가 있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이 서로 체온을 나누기 위해 가까이 갔다가 가시에 찔려 멀어지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 다시 가까워지는 거리 두기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멀면 춥고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받는다. 결국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숲에서도 관계를 찾을 수 있다. 나무들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햇빛을 나누지 못하고 뿌리가 서로 엉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고 어깨를 기댈 수 없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건강하게 자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관심은 간섭이 되고 과도한 배려는 부담이 된다. 반대로 무관심은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좋은 관계란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리여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몇 센티가 좋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너무 가까워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고 너무 멀어 상대를 잊어버리지 않는 거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한 뼘, 이해하려는 노력 한 걸음, 먼저 손 내미는 용기다.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들이 같은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지키며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그 따뜻한 간격이 점점 메말라가는 지금,
오늘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몇 센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