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힘, 사람을 잇다
이혜란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한 편의 시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문학의 뿌리는 시간을 거슬러 공간 속에서 대를 잇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가 출간한 ‘오후 그림자에게’ 시집으로 독자와의 대화를 가졌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낭독될 때마다 울고 웃던 독자들을 통해 글의 힘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황순원 문학관을 걸으며 한 작가가 남긴 문장의 무게와 만났다.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이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시간은 또 다른 설렘이었다.
작가가 남긴 원고와 유품, 작품 세계를 담은 문학관에는 작가의 삶과 문학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고 한 장, 낡은 필기구 하나에도 시대의 숨결이 배어 있었고 사진과, 낡은 책상 하나까지 잘 보존되어 한 사람의 문학세계를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에 머무는 순간 황순원 작가가 걸어온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관람객들이 작가를 기억하려는 마음과 존중까지 보였다. 한 사람의 문학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 지역의 문화자산이 되고 교육의 장이 되며, 관광자원이 될 뿐 아니라 작품을 기리는 공간이 된다. 또한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기억과 감성을 이어주는 문화의 쉼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을 거꾸로 하면 양평이어서 평양 출신인 황순원 작가 기념관을 양평에 세우게 되었다는 문화 해설사의 해설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문학관을 나서며 작가가 평생 붙들었던 문학이라는 뿌리의 깊이를 떠올리다 문득, 속도가 경쟁력이 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뿌리 삼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문학은 돈을 벌어주는 산업과 거리가 멀다. 사회를 지탱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정신적 토양이며 한 도시의 기억 창고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상상력을 키우며 꿈을 갖게 되고 어른들은 잊고 있던 감성을 되찾는다. 관람객에게는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가 될 뿐 아니라 시민에게는 자부심의 뿌리가 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들 한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이유다. 한 권의 책은 타인의 인생을 살아보게 하고 돌아보게도 한다. 그렇다면 한 편의 시는 어떤가. 슬픔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따뜻한 한 줄의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문학은 세상을 크게 흔들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남긴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 작은 파문에서 시작된다. 한 권의 책은 정보는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건너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슬픔을 이해하게 되며 공감하게 만든다. 문학이 바로 그 믿음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도시다. 그리고 기록해야 할 삶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와 공감을 얻는 일에 안산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와 예술인은 집중해야 한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문화는 필요할 때 급히 지을 수 있는 건물과는 다른 시선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안산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을 알아가고, 시간이 흘러도 나무가 나이테로 기억을 남기듯 잊혀가는 이야기를 붙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신은 그 그늘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나무를 심는 이유는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 때 미래 세대가 쉬어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황순원 작가의 문장은 오늘의 나를 만났고 한 편의 시는 독자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문학은 세상을 크게 흔들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따스한 파문과 공감을 남긴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변하지 않았다. 열매는 한 계절을 기쁘게 하지만 한 생애를 지탱하는 것은 뿌리인 것처럼, 오늘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시 앞에 잠시 멈춰 서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