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뜨거운 노년의 생존

이혜란 시인

2026-08-12     안산뉴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폭염 경보가 울린다. 입추가 무색하게 기록적인 폭염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이 연일 갱신되고 거리의 아스팔트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정부는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방송에서는 한낮 야외 활동을 삼가고 물을 자주 마시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폭염은 피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견뎌야 할 생계이며 일상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에서는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하여 복지 및 지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노인 취업자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 발표가 있었다. 언뜻 보면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활력처럼 들린다. 경험과 능력을 갖춘 노인 인구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숫자 뒤 숨겨진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대다수 노인이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노후를 책임져 줄 연금은 충분하지 않고, 치솟는 물가와 의료비, 생활비 부담은 은퇴한 후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젊은 자녀에게 기댈 수 없고,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세대이면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갈망은 다시 거리로 내몰고 있다.

과거에는 노년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젊은 날의 수고로움을 내려놓고 삶에서 쌓은 지혜를 나누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평균 수명의 증가는 일부 노인들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의 시작이 되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거리 청소와 건설현장, 배달과 경비업무는 멈출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에게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경제적 재난이기 때문이다.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프로야구 경기 도중 20대 관중이 쓰러질 만큼 폭염은 젊은 사람도 버티기 힘든 환경이다. 혹자는 성실한 노년, 아름다운 노동이라는 말로 포장할지 모른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책임감과 근면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미담으로만 치부한다면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고령층 취업자 천만 명 시대를 과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선진국 기준을 단순히 평균 수명이나 경제 규모로만 말할 수 없다. 한 사회가 노인들에게 얼마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는지 생계 걱정 없이 쉴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폭염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일지 모른다. 천만 명 고령 노동자가 흘리는 땀방울 속에는 노인 빈곤, 불안정한 연금제도, 무너진 사회 안전망이라는 우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폭염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온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에어컨 아래서 더위를 피하지만 생계를 위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도 달라져야만 한다. 사회 취학 계층과 노인 문제를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품격이 결정된다. 노년의 어깨 위에 올려진 생존의 무게를 덜어주는 사회, 가장 약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기록적 폭염과 고령층 취업 천명 시대, 언뜻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숫자 같지만, 그 이면에는 퇴직하고도 쉴 수 없는 사회의 민낯이 숨어 있다. 폭염이 단순한 기후 재난이라면 노년의 노동을 개인 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폭염에도 거리 위에서 일해야만 하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선진국의 품격은 위험을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인내와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가장 약한 사람을 지켜내려는 의지와 힘이다. 폭염은 자연이 만든 재난이지만 가장 뜨거운 거리 위에 노인과 취약계층을 남겨 둔 채 선진국을 논할 수는 없다. 진정한 공동체는 가장 약한 사람에게 먼저 그늘을 내어 주는 사회라고 본다. 40도가 넘나드는 폭염도 계절이 바뀌면 지나가겠지만 노년의 생존은 내일도 계속되기 때문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