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들지 못하는가
최라영 안산시평생학습관장/안산대 교수
잠을 잘 자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2021년쯤이었다. 당시 나는 살면서 처음 겪는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벅찬 일들을 혼자 감당해 내며, 그 무렵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다행히 힘든 일은 지나갔고 일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한 번 떠나간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몇 년째, 그사이 찾아온 갱년기도 불면에 한몫했을 것이다.
요즘도 몸은 분명 피곤하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연신 쉬라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침대에 눕는 순간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그리고 생각이 시작된다.
잊고 있던 오래전 일이 불쑥 떠오르는가 하면, 낮에 있었던 일을 혼자 복기하기도 한다. 지금 해결해야 할 고민이 꼬리를 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 끌어와 걱정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침대 위에서 계획까지 세운다. 낮에는 바빠서 생각할 겨를도 없던 것들이, 왜 하필 잠자리에만 누우면 하나둘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몸은 퇴근했어도 생각은 아직 퇴근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누워 있는 것도 고역이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잠과 씨름을 하고 있다. 결국 손에 쥐는 것은 휴대전화다. ‘잠깐만 보다 자야지.’ 유튜브 짧은 영상 하나로 시작한 화면은 끝없이 이어진다. 몇 번 넘기지 않은 것 같은데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잠이 오지 않아 들어 올린 휴대전화 때문에 잠은 더 멀어진다. 알면서도 매번 반복하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 날이다. 그렇게 잠을 설쳤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침이 되면 또 멀쩡히 하루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새벽 수영을 가고, 세 번은 헬스장에 들른다.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회의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주어진 업무를 처리한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나는 어떻게 이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걸까?’ 몸이 적응한 것인지 정신이 각성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름없기에 나만의 불면은 다른 이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질수록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잠도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잠을 줄이면 시간이 늘어난다고 믿었다. 할 일이 많으면 잠부터 줄였고, 늦게까지 일한 날에는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은 뿌듯함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잠은 하루를 살아내고 남은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또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우며 산다. 일 잘하는 법, 새로운 기술, 건강을 위한 운동법까지 끊임없이 배운다. 나 역시 수영과 헬스를 하며 열심히 몸을 관리한다. 그런데 정작 ‘잘 쉬는 법’은 얼마나 배우며 살아왔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불안해하고, 잠시 멈추면 뒤처지는 것 같아 무언가를 찾는다. 쉬는 순간에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내일을 준비한다. 어쩌면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단순히 ‘불면증’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설명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끝내지 못한 생각과 내려놓지 못한 일들,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오늘 밤으로 끌어와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불면증은 의학적으로 접근해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제다. 결코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년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며, 나는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한 가지를 배우고 있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오늘 하루를 여기에서 끝낼 줄 아는 것, 그것 역시 삶의 중요한 능력이다. 오늘 밤에도 침대에 누우면 수많은 생각이 찾아올지 모른다.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 보고,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다 결국 휴대전화를 집어 들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하루의 생각을 온전히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만큼 충분히 했어”,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조금 나누어주어도 괜찮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시간쯤은, 내 삶에도 꼭 필요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잘 자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잘 끝내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