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하나, 마음도 하나
이혜란 시인
마음이 하나되는 추석명절, 보름달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국경도, 언어도, 살아온 방식도 가리지 않고 똑같은 크기로 지구촌 모두에게 아낌없이 빛을 내어준다.
커다랗게 차오른 보름달을 보면 우리 마음에도 둥근 그리움이 떠오른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풍요로운 결실에 감사한다.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을 나누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떠올린다. 차례를 준비하고 송편을 빚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안녕을 묻는 날이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가족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중국의 중추절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둥근 월병을 먹는다. 둥근 모양에는 가족의 재회와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오츠키미는 수확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까운 나라 베트남의 중추절인 뗏쭝투는 아이들을 위한 축제이면서 가족이 함께 모여 사랑을 나누는 깊은 의미가 있다. 이름도 음식도 의식도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은 놀랍도록 닮았다. 이렇듯 풍습은 다르지만 서로의 평안을 바라는 방향은 같은 것이다. 결국 명절의 본질은 음식이나 의식에 있지 않고 사람을 향한 마음에 있는 셈이다.
우리의 추석도 그렇다.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 한쪽이 고향으로 먼저 기운다. 예전의 명절은 마음이 풍선처럼 먼저 부풀어 차편을 고민하고 선물을 골랐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고향은 음식 냄새로 그득했다. 마당에는 햇살이 내려앉았고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담을 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 하나를 얻어먹으며 입천장을 데면서도 행복했던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자식을 기다리며 명절 음식 하나씩 미리 준비했을 엄마의 손이 바쁘고 광에는 음식이 쌓여 간다. 휘영청 밝은 달이 창호지를 비추면 밥상에 둥글게 둘러앉은 가족들,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 아이들의 재잘거림, 도란도란 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그런 기억들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의 추석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가족의 형태도 삶의 방식도 달라져 성묘를 미리 다녀온 후 가족여행을 떠나는 집이 늘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먼 고향도 자식이 찾아갔다면 지금의 추석은 부모님이 자식 집으로 오는 역귀성도 늘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전통이라 믿었던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살아가고 다른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함께할 이유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이 이해하고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고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명절은 어쩌면 인간이 오래전부터 만들어 온 가장 따뜻한 안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안산은 특히 다양한 국적과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안산의 추석은 조금 특별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음식, 종교와 풍습이 한 동네와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그렇다면 추석 역시 우리만의 명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 걸음 나아갈 필요가 있다. 혼자 명절을 보내는 이웃, 타국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주민들에게 낯선 명절이 되지 않도록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 오랫동안 소원했던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다. 중추절을 보내는 사람도, 오츠키미를 즐기는 사람도, 뗏쭝투를 기다리는 아이도 같은 하늘에 같은 달을 바라본다. 풍습은 달라도 소망은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기를, 가족이 평안하기를,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달은 국경을 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사람 마음에는 철통같은 국경이 있기도 하다.
이번 추석은 그 경계를 지우는 날이면 좋겠다. 가족과 이웃 사이의 벽을 낮추고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혼자 견디는 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날이면 어떨까.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빈자리를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손길 하나가 둥글게 채워주기도 한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보름달은 뜬다. 그 달빛의 품을 우리도 닮아 보자. 조건 없이 공평하게 빛을 내어주는 달처럼 우리가 가진 온기를 조금씩 나누는 추석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