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도 퇴근 시간이 필요하다

최숙희(소통문화교육협회·마음다독 대표

2026-10-21     안산뉴스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 날개 글에 나오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마음 챙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 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 문장을 곱씹다 보니 책에 실린 브라이언 패튼 시인의 ‘고양이는 옳다’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억만을 하고, 그 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에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단다. 필요 이상의 기억을 붙잡고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와 달리, 내보낼 줄 아는 고양이의 선택이 부러워졌다.

‘마음속에서 내보낸다’라는 글귀를 따라가니 명상을 즐기는 지인이 떠오른다. 하루에 두어 시간씩 명상을 하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보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고요한 시간에 머무르게 된다”라고 한다. 생각을 밀어낸다는 것, 걱정이 너무 많아 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에게는 부럽지만 따라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필자는 ‘머릿속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다’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 생각들은 야근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퇴근이란 걸 모른다고 한다. 생각들이 퇴근해야 좀 쉴 수 있는데 그들의 에너지는 고갈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 생각들은 마음속에서 ‘불안’, ‘걱정’, ‘두려움’이란 동아리를 결성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끈끈한 네트워크까지 자랑하며 우리의 일상을 잠식해 간다. 그 생각들의 야근이 우리 마음을 지치게 하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는단다.

오래전 양평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글귀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 서체로 알려진 손영희 작가의 캘리그래피 내용이다.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지? 그것 봐, 기억조차 못 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지금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거야’. 그러고 보면 잠 못 이루게 했던 고민도 어느 순간 새로운 고민으로 교체되곤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걱정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고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도 정해보자. 오늘은 이것만, 여기까지만 고민하는 것으로 하고, 저건 내일부터 고민하는 거로 하자. 필자도 걱정이 많아질 때면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어떤 것은 과감하게 ‘내일부터 고민하자!’라고 미뤄둔다. 어쩌면 마음속에서 내보낸다는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또 가끔은 ‘2시부터 고민하고, 지금 한 시간 만이라도 그 생각은 쉬자’ 하면서 시간을 정하기도 한다.

그 시간에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로 향한다. 잠깐이지만 숨이 쉬어지기도 한다. 혹시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게 있다면, 당장 해결될 수 없는 거라면 ‘퇴근한 뒤에’, 저녁을 먹고 나서’처럼 고민할 시간을 정해보는 건 어떨까. 그 잠시의 시간이 내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칫 걱정만을 붙잡느라 정작 내 마음은 놓치고 살아간다. 걱정거리가 사라져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걱정이 남아 있어도 잠시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자. 어쩌면 마음 챙김이 거창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을 돌보는 것, 그 작은 시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