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속에 생기는 우리의 생각
신문화속에 생기는 우리의 생각
  • 안산뉴스
  • 승인 2023.06.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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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시인

하지를 앞둔 아침은 참 일찍 찾아온다. 잠자리에 더 머물고 싶지만 눈이 부시도록 창을 향해 들어오는 햇살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커튼을 쳐도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햇살을 막고 싶지 않아서 덕분으로 일찍 일어나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보게 된다.

휴대폰에 단톡방 운영자들이 아무리 단속을 하고 경고를 해도 밤새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어서 아니면 무엇인가 불편한 일을 함께하자고 단톡방에 응원의 말을 듣고 싶어서 올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기분 좋은 내용도 있지만 대다수의 보내오는 내용은 SNS상에서 본인이 보고 또는 읽고 스스로 감동을 받은 내용을 퍼서 보내는 내용이다.

귀감이 되는 좋은 글, 그림도 있고 사진도 있다. 모두가 잘 살아보자는 내용이다. 힘내고 용기내어 세상하고 한판 싸움에서 승리하자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너무 같은 내용을 여기저기 각기 다른 단톡방에 보내어서 휴대폰 속의 단톡방이 보낸 이의 감정과 감상을 이입을 시키려는데 이용되는 쓰레기통 같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 생각이 카카오 사업자에게 전해져 채팅방 탈출방법이 이제 카톡방에서 본인이 함께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나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단톡방에서 나가고 싶은데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초대된 대로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제 나가도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나가는 기능이 있어서 이제부터는 가능하다고 한다.

조용히 나가기를 하려면 조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아이폰은 앱스토어 갤럭시는 플레이스토어에서 카카오톡을 업데이트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조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한 참 연구해야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연구하면 다 가능하다.

팬데믹을 지난 3여 년 동안 치르고 난 이후 생각지도 못한 장례가 있어서 황당하고 황망하기 짝이 없다. 또한 그 소식을 접하는 부고가 카톡방이나 메시지 함으로 받게 되는데 깜짝 놀란다. 그 이유는 본인 사망 부고를 본인이 하는 격으로 카톡방이나 메시지 함으로 받게 되니 처음에는 장난(?) 하고 이리저리 알아보면 당사자가 맞는다는 이야기에 참 황망 중에 더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일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보내고 받는 것이 맞는가? 어떤 방향으로 이런 문자를 이해해야 되는지를 누구와 어떻게 상의하고 알아야 하는지 신문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편의성, 편리성이 앞선 생각에서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 좁아서일까? 아니면 넓은 폭이 없는 생각에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화를 만든다. 만드는 것은 우리가 책임질 사회의 문화이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필자는 기독교인이지만 내적 유교적인 사고가 있어서일까도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예절과 예의가 있다. 부모님 상을 당하고 잘 모셨다고 인사의 글이 카톡 방이나 메시지 함에 올라오면 수고했다고 댓글이 달린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했는데 웬 수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쉽게 실수를 한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면 댓글을 달지 않으면 된다.

요즘은 어떤 일이 시작이 되면 그 일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전에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신문화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와 예의가 편리성이나 편의성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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