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시
해탈시
  • 안산뉴스
  • 승인 2023.07.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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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종승 대표기자

정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는 요즘 들어 민생을 외면한 채 정쟁 일변도로 치닫는 정치인들의 악귀를 지켜보노라니 힘겨울 지경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KBS 수신료 분리 징수, 모 인사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가능성,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 대규모 호우피해 등등에 이르기까지 국회 원내 교섭단체가 모든 일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침 뿐이다.

무더위와 장마에 지치는 것도 모자라 대화와 타협이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서산대사가 85세에 입적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해탈시’가 문득 떠올랐다.

뜨거운 여름에 낭송으로 유명해진 서산대사의 ‘해탈시’를 통해 명상으로 더위를 삭이며 삶의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전문을 소개한다.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간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노.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 번 못 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 게 있소.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소.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 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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