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정체성은 반월공단이다”
“안산의 정체성은 반월공단이다”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9.03.2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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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삼 경기도의원

주요프로필

-1967년 전북 김제 출생

-경기도의회 3선 의원(8·9·10대)

-경기도의회 노동인권특위위원장(현)

-경기노동정책포럼 공동대표(현)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장(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전)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사무처장(전)

-안산경실련 사무국장(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다져진 정책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경기도의회 3선 의원 고지에 오른 인물이 있다. 김현삼(52) 경기도의원이다.

김 의원은 현재 3선 도의원이지만 첫 도전에서 낙선한 아픈 경험도 갖고 있다. 두 번째 배지 도전부터 연속 3선을 하고 있는 김 의원은 초선 시절 당내 수석 대변인을 맡아 당시 김문수 지사와 무상급식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후반기 상임위원장을 맡는 행운도 뒤따랐다.

선출직 의원이 된 후 ‘경기도 근로기본조례’ 제정으로 노동관련 행정이 전무했던 경기도에 지난해 ‘근로기본종합계획’이 세워지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경기도형 노동정책을 탄생시킨 김 의원은 경기도노동권익센터가 이달 말 계획으로 개소 준비 중이고 경기도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실현이 큰 보람이라고 얘기한다.

시민단체 활동 경험으로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이 강점이고 안산의 정체성은 반월공단이라는 김 의원을 현장 인터뷰했다.

-안산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글 쓰는 작가가 꿈이었다. 안산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을 때는 대학 진학 실패하고 군 제대 후 학원비를 벌기 위해 1989년 10월에 왔다.

오래 살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대성합성화학이란 회사에 취업해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젊은 시절 글 쓰는 작업의 경우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뒤늦게 학업을 했다. 안산에 정착한지 30년째다. 그 중에서 경기도의원 생활이 현재 10년이다. 안산 인생의 3분의 1이다.”

-노동운동도 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청춘에 반월공단 대성합성화학이란 회사에 현장 노동자로 들어갔다. 몇 달만 일하고 나갈 계획이었는데 회사 내에서 부당한 일을 보고 항의하다가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당시 현장에서 밀링기계에 동료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노동조합 측에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회사 측에도 목소리를 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그 당시 노조위원장의 물품 구입에 따른 책임론으로 중도사퇴하자 주변의 동료들이 출마를 권유하고 저도 모르게 노조 위원장 후보로 등록됐다.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노조위원장 당선이 1990년이다. 1996년 3월까지 노조위원장을 7년 4개월 정도 했다. 하지만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당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어린 나이였지만 노동운동을 하면서 작업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시절만 해도 경영자들이 자금에 여력이 있어도 작업환경을 신경 쓰지 않았다.

반월공단 입주기업은 모두가 중소기업이다 보니 산재예방이 우선 투자 순위에서 밀렸다. 산재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현재 작업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열악한 곳이 많다. 우리나라가 산재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1년에 35명 정도다.

9대 경기도의원 당시 산재 관련 경기도조례를 만들려고 했지만 경기도가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반대해서 제정하지 못했다.

반월공단은 국가공단이기 때문에 경기도와 안산시가 개입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산경실련을 이끌었었다.

“안산경실련 사무국장을 10년 동안 했다. 초대 권태근 국장과 2대 김제동 국장에 이어 3대 사무국장을 맡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방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 감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안산경실련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 정책 제안은 물론 예산감시, 시화호 오염살리기 시민운동을 벌였다.

경실련은 특히 매니페스토운동으로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전국 최초로 경실련이 시작한 매니페스토운동이 한창일 때 전국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현재의 마을만들기 같은 운동도 했다. 시민운동을 신명나게 했다.”

-노동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활동 방향을 바꿨다.

“우리나라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본과 노동이라는 이분법적이었다. 노동운동도 민주 대 반민주였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힘을 키워서 사측과 대등한 관계를 가져가자는 분위기였다.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자 환경, 생태, 여성에 대한 내용들이 이슈화됐다.

새로운 사회에 걸 맞는 시민운동이 시작된 셈이다. 그 때 경실련은 새로운 이슈는 물론 부동산, 집값에 이르기까지 시민운동의 선두주자였다. 노조위원장에서 해고당하면서 주변의 권유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민운동단체로 옮겨왔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기억이 또렷하다. 경실련 사무국장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제종길 의원이 국회로 진출하고 2005년 10월 선출직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제도권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고민 없이 이듬해 선거에 처음으로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년 동안 제종길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보좌관을 그만두고 2년을 준비하고 2010년 경기도의원에 재도전해 의원이 됐다.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도의회 소속 정당에서 전반기 수석대변인을 맡겨줬다.

김문수 당시 지사와 무상급식을 놓고 수많은 설전을 벌였다. 초선 전반기 의정활동을 인정받아 후반기에 기획재정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9대 전반기는 당 대표의원을 맡아 남경필 지사 시절 정치연합의 ‘연정’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굵직굵직한 사건이다.”

-3선 경기도의원이다. 그동안 발의한 조례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경기도의원 10년째다. 그동안 20여개 조례의 대표발의를 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경기도민 1천340만 명 도민의 행정 가운데 노동관련 내용이 전무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기도근로기본조례’를 대표 발의했다. 경기도 근로기본조례를 바탕으로 지난해 경기도 근로기본종합계획이 최초로 세워졌다. 경기도형 노동정책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근로기본조례 제정으로 가칭 경기도노동권익센터가 이달말 개소 예정으로 준비 중이다. 조례 하나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덧붙인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경기도 본청 비정규직이 현재 100%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경기콜센터 비정규직 직원도 오는 6월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기업들의 환경설비 투자시 경기도가 원스톱 서비스하는 경기도환경시설설치지원조례도 제정했다. 3선 의원하면서 보람 느끼는 일이다.”

-9대 도의원 시절부터 안산스마트허브(반월공단) 관리권을 안산시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월공단은 3D 업종의 중소기업이 밀집한 국가산업단지다. 시대흐름에 맞게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1990년대 초 반월공단의 환경지도단속권을 환경부가 갖고 있었다. 그 당시 단속 위주 행정 집행으로 기업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환경지도단속권이 이후 경기도로 이관돼 안산시와 협조하며 단속하지만 역시 처벌 위주의 지도단속이 계속되고 있다.

반월공단은 관리권을 국가가 갖고 있어 기초나 광역자치단체가 기반 시설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공단관리권이 이양되면 중앙 정부가 가져가는 세금도 당연히 자치단체로 넘어온다. 안산의 정체성은 반월공단이다. 공단관리권을 기초자치단체로 넘겨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의 요구에 맞는 마케팅과 기술개발, 자금융자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반월공단이 안산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공단을 살리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공단 입주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금융비용이다. 좋은 기술과 판매처를 갖고 있어도 기업의 운영자금이 없으면 공장 가동이 중단 위기를 맞는다.

금융비용에 쫓기다보면 반월공단이 회사 쪼개기를 할 수밖에 없다. 회사 쪼개기는 한 필지의 공장용지에 여러 개의 회사가 입주해 사용하는 구조다. 공단에 영세기업들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제조업들이 금융권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산업구조고도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 맞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안산의 정체성은 반월공단이다. 기업을 살려야 한다. 반월공단 활성화가 없으면 도시 회생도 없다는 생각이다.”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안산을 위해 어떤 의정활동을 펼쳤나.

“경기도의회에서 기획재정위원장과 당 대표의원을 하면서 안산시가 필요로 하는 예산을 많이 가져왔다.

반월공단 도로 개보수비용을 비롯 여열회수시설 설치비 등 공단 기반시설을 개선하는데 들어가는 도비 확보를 많이 했다.

단원고를 비롯 별망중, 단원중, 고잔초 체육관 건립예산을 가져오거나 확보했고 초지동 둔배미체육관과 둔배미마을복지관 건립에 따른 도비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경기도의원 임기 중 해야 할 사명은.

“반월공단은 자동차 부품생산업체 외에 염색, 섬유, 피혁 등의 업종이 입주해 있다. 대부분 3D업종으로 분류돼 사양 산업이라고 천대받고 있다.

이들 업종도 부가가치가 있다. 기술개발을 통해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면 경쟁력 있는 패션산업으로 업종 전환이 가능하다. 최근 경기도와 가칭 ‘섬유종합지원센터’ 설립 논의를 시작했다. 임기 중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장기적으로는 경기도와 안산시가 협력해서 베트남이나 중국 등지에 ‘해외전시관’을 만들어 반월공단 생산제품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

-더불어민주당 안산단원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도전했었다.

“경기도의원을 3선하는 동안 지역위원장이 3번이나 바뀌었다.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의 안산단원을 지역구 조직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정당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안산단원을 지역위원회가 총선에만 관심 있지, 지역위원회다운 정당조직이 안 되고 있다. 단원을 지역에서 도의원 선거를 4번 치렀다. 당내 고문들이 단원을 뿌리 상실을 우려해 고민 끝에 지역위원장 공모에 신청했었다.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단원을 지역구 고문과 도·시의원, 당원과 협의해 가면서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지역으로 남아 안타깝다.”

-안산시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산의 정체성과 젖줄은 반월공단이다. 무엇보다 공단 활성화가 가장 시급하다. 좋은 회사들이 안산을 이미 많이 떠났고 떠나려 하고 있다. 안산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은 안산이 호주 캔버라시를 모델로 한 계획도시다. 캔버라시처럼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교육에 대한 투자다. 안산의 경우 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민층이 많은 도시다. 행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의 매력을 얘기해 달라.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한걸음 들어가 표현하면 ‘조례 제정과 개정을 통해 행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성명서나 주장을 통해 관심과 정책입안을 유도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는 조례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서 제도 변경을 할 수 있다. 직접 사회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것이 매력이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유권자들도 뽑고 난후 선출직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원하는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유권자의 의식수준만큼 정치인은 변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김현삼의 강점을 어필한다면.

“노동운동과 오랜 시민단체 활동 경험으로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저는 노동자 출신이다. 현재 경기도의원이지만 스스로 서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처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노동자 출신 정치인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인생의 비전과 지침으로 삼는 좌우명은.

“거창한 문구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삶을 살자’다.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누군가를 대상으로 거짓말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저의 마음에 품고 있는 명심보감이자 인생관이다.”

-꿈 너머 꿈은.

“정치를 그만두게 되면 도시 외곽으로 나가 예쁜 카페를 하고 싶다. 카페가 음료를 판매만하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지역 리더들의 토론 공간을 만들고 싶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 냄새나는 공간을 꾸며 함께 어울리고 지역사회 담론도 만들어가고 싶다.” <여종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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